대전 도심의 한국원자력연구원 내 연구용 원자로인 하나로에서 방사능 누출 사고가 나 대전시민 150만 명 모두가 안전지역으로 대피하는 데 32시간이 걸린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대전시와 민간연구기관인 원자력안전연구소는 27일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의 사고를 가정한 '원자력 시설 사고 주민대피 예비평가' 결과를 공개했다.

주민대피는 원자력연구원에서 발생한 사고로 방사능이 누출돼 '적색경보'가 발령됐을 때를 가정해 진행됐다.

대피 범위는 대전의 행정구역을 가로·세로 30km로 설정하고 원자력연구원을 중심으로 반경 15km 범위다.

국내의 방사선 비상계획 구역이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기존 8∼10㎞에서 20∼30㎞로 확대된 점을 고려하면 대전 전 지역이 비상계획 구역인 셈이다.

연구소는 대전 지역의 건물과 산 등 실제 지형과 행정구역별 인구 분포, 도로 현황 등을 적용한 '동적 대피 시뮬레이션'을 활용했다.
 

고려원전 사고 대피 훈련 / 연합뉴스

대피 방식은 방사능 누출과 같은 중대사고 발생 30분 후에 통보하는 것을 가정해 대피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살펴봤다.

연구 결과 시민 153만 명이 모두 대전을 벗어나는 데 32시간이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민 90%가 대전을 탈출하기 위해선 하루(21시간) 정도가 걸렸다.

원자력연구원과 붙어있다시피 한 유성구 관평동, 구즉동, 신성동 등의 주민 20여만 명이 대피하는 데도 5.5시간이 필요했다.

대피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은 교통체증 때문이다.

대전의 연결 도로가 1만 4천533개로 다른 원전 지역보다 월등히 많지만, 좁은 지역에 차량 59만여 대가 한 번에 쏟아지면서 도로가 제 기능을 못 하기 때문이다.

 

대로가 부족하고 도로 구조가 복잡하게 설계된 동구 지역의 대피 시간이 가장 오래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고속도로 입구와 인구가 밀집된 중구 대둔산로 주변 정체도 심각했다.

연구소 측은 지역별 대피경로와 최적 대피경로의 선정, 주기적인 대피 훈련, 최적의 구난 시스템 구축 등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가령 대피 시간이 가장 오래 걸린 동구의 경우, 동구를 지나는 고속도로와 병행해 8km 정도의 가상 국도를 개설했을 때 대피 시간이 5% 단축되는 효과가 있었다.

행정기관과 정부가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 같은 대피 자료를 바탕으로 도시계획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연구소 측은 제안했다.

한병섭 원자력안전연구소장은 "해안가에 있는 국내 대부분 원전시설과 비교해 대전은 전면 개방돼 있어 대피가 빠를 줄 알았는데, 좁은 지역에 워낙 많은 인구가 밀집돼 있다 보니 굉장히 많이 지체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원전사고뿐만 아니라 대형 사고를 대비해 대피경로와 대피형태 등을 파악해 행정기관이 도시 기본계획에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원자력연구원을 대피 대상시설로 고려하지 않고 있지만, 연구시설도 잠재적으로 위협 시설"이라며 "방재라는 건 반드시 사고가 터진다는 개념이 아니고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민방위 훈련처럼 평소에 준비해 둬야 한다"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뉴스티앤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