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래호 작가 / 뉴스티앤티

자연의 아름다움을 명상하는 영혼에게는 어떠한 해악이나 실망도 엄습하지 않는다. 자연의 조화에 심취한 이들은 정신적 절망 혹은 정치적 예속 상태에서 빚어진 절망의 교의나 성직, 폭정 따위를 가르친 적이 없다. -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산책> 1841년 12월 31일 일기

대전의 계족산(429m)이 전국적인 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바로 맨발로 황토가 깔린 산길을 걷는 재미 때문이다. 원래 이 길은 자갈 투성의 임간도로였는데 한 기업이 14.5Km에 걸쳐 황톳길을 조성한 것이다. 황토의 촉감과 지압 속에 에코힐링(eco-healing) 된다는 입소문을 타고 전국에서 인파가 몰리고 있다. 에코힐링은 Ecology(자연)와 Healing(치유)의 합성어로 ‘자연 속에서 치유력을 회복하고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삶을 누리는 것’을 의미한다. 현대적인 원조는 유럽 사람들이 즐기는 트레킹이다. trekking은 남아프리카 원주민처럼 ‘소달구지를 타고 서둘지 않고 느긋하게 하는 사색 여행’이란 뜻이다. 보통 400-500m 높이의 평원이나 산길을 2-3일 동안 계속 걷는다. 스위스 융프라우의 초원지대나 네팔과 몽고 등지의 산야가 트레킹의 적지다. 인간과 자연이 하나 되는, 서로 안고 품는 트레킹. 사실 이런 자연치유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조선 후기의 학자인 김창흡(金昌翕: 1653-1722)은 한국 산수의 멋을 가장 잘 아는 선비로 꼽힌다. “낭떠러지와 정상을 뒤져 오르고 구름과 달을 뒤쫓아 가노라면, 절로 마음에 맞을 뿐만 아니라 내게 슬픔과 괴로움이 있다는 것을 잊게 되오. 내게는 산천이 진실로 좋은 벗이자, 훌륭한 의원이오.” 신광하(申光河: 1729-1796)는 <백두록>에서 “백두산 정상에 올랐더니 천하만사가 까마득히 저절로 잊혀졌소. 세상의 이른바 부귀와 빈천, 사생과 애환이 하나도 내 가슴으로 들어오지 않았고, 제왕과 영웅호걸들의 업적이란 것도 그저 미미한 것에 불과하더이다.”라고 실토했다. 천하의 모든 일을 잊게 하는 대자연은 인간에게 무한한 치유력을 발휘한다.

자연은 시작도 끝도 없는 무시무종(無始無終)한 우주의 산물이다. <회남자> 고유(高誘)주에는 ”사방과 상하를 일러 우(宇)라고 하고, 옛날의 지나간 것과 현재에 오는 것을 일러 주(宙)라고 한다’고 명명했다. 이런 우주에서 한 점, 선도 안 되는 사람의 수명을 말해야 무엇 하겠는가? 또한 인간사 행불행을 논하는 것도 부질없는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유한존재이기 때문에 더욱 수명 문제는 중요한 것이다.

4월 15일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의 발표에 따르면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82.1세다. 하지만 세계보건기구(WHO)의 2015년 한국인의 건강수명은 73.2세로 나타났다. 그러니까 8, 9년은 질병에 시달리며 살아간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런 결과는 말 그대로 통계적 ‘평균’일 뿐 개인별로는 천양지판이다. 세상에는 요절이니 미인박명, 객사와 호상 등 다양한 ‘수명’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극단적인 생의 선택인 자살도 ‘수명’의 한 부류다.

기실 정신적, 육체적으로 아무런 고통이 없는 상태를 건강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고통을 느끼는 병에는 두 가지 형태가 있는데 부족하거나 과잉, 그리고 다른 하나는 질적인 것이다. 혈압이 지나치게 높거나 낮거나 하는 문제는 전자다. 후자는 박테리아, 바이러스, 균 등 기관에 침투한 외적 요소를 말한다. 계절과 집단은 한 생명체에게 적응을 위해 부단히 노력할 것을 요구한다. 사람은 몸은 말할 것도 없고 마음도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 몸 떠난 마음도 마음 떠난 몸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과학과 의료의 발달로 인간의 기대수명은 갈수록 높아질 것이다. 이제 몸과 마음이 함께 건강한 삶의 질이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6.25 한국전쟁의 상흔을 딛고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 물신화 속에 ‘잘 살아보세’를 외치던 1960년과 70년대. 우리는 먹고 살만해지면서, ‘말 좀 하자’는 80년과 90년대 민주화시대를 치열하게 거쳤다. 이제 2천년대 웰빙과 힐링을 외치며 어떻게 하면 ‘잘 놀아보세’를 고민하는 시대가 되었다. 소로는 “내 마음속에 담겨 있는 꼭 그만큼의 자연이 나의 집이다.”라고 단정했다. 도심의 집이 아닌 대자연 그 땅에 나만의 집을 짓는 것- 진정한 마음과 몸이 건강한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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