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시민, 시민단체들 불안·분노 확산

유성 핵안전 시민대책본부 관계자들이 지난해 9월 13일 오후 대전 유성구 한국원자력연구원 앞 사거리에서 "연구원 핵시설에 대한 시민 안전대책을 마련하고, 사용 후 핵연료 반입과 파이로 실험을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 연합뉴스

대전 소재 한국원자력연구원이 인체에 위험한 방사성폐기물과 사용 장비를 무단 폐기하고 결과를 조작한 충격적인 사실《뉴스T&T 20-21일 보도》이 알려지자 대전과 충청 시민들이 21일 원자력연구원 해체를 요구하며 크게 분노하고 있다.

원자력연구원은 대전시민들에게 방폐물 안전 처리를 약속해 놓고도, 세슘과 코발트로 오염된 52t의 폐기물과 10t의 중저준위 폐기물을 용융하고 방폐물 처리에 쓰인 장비 등을 함부로 버렸다.

이와 함께, 관련 기록을 조작·은폐·축소하고 진상조사를 방해하는 등 안전불감증이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는 지난 20일 한국 원자력연구원의 방폐물 불법실태조사(지난해 11월 7일~올해 4월 19일)를 벌인 결과 지난 2월 중간발표 때 12건보다 24건이나 많은 36건의 불·탈법 사례를 적발, 사례를 공개했다.

전문가 14명을 투입한 원안위 적발 사례에는 특별 관리해야 할 방폐물 0.2t을 일반 콘크리트에 섞어 버리고, 방사성에 오염된 물 1t을 빗물에 흘려보낸 사례가 포함됐다.

또 방사선위험구역에서 쓴 현미경·열충격장치·항습기를 버리고, 같은 구역에서 사용한 장갑 55kg를 녹여 폐기했으며, 실험 뒤 남은 방사성폐기물 1.3t을 원자력연구원 내에 방치하기까지 했다.

 

한국원자력연구원 CI / 한국원자력연구원

원자력연구원의 안전 불감은 더 심각했다. 1,290kg의 폐기물을 폐기하고도 485kg이라고 줄여 기록하고, 4.9t의 폐기물은 기록조차 하지 않았다

폐기물 처리장에서 사용한 냉각기의 무단 반출과 방폐물의 저장과 운반 사항을 기록하지 않고 보관한 경우도 있었다.

조사대상인 원자력연구원의 전·현직 직원들에게 폐기물 무단 배출을 부인하거나 배출횟수, 소각량 등을 허위로 진술하도록 회유한 사실도 드러나 속임수 연구라는 비난을 면치못하게 됐다.

피조사자 중에서는 이 지시에 따라 우라늄 제염에 쓴 콘크리트가 일반폐기물이라고 거짓진술을 반복했고 자료도 허위로 냈다.

이와 관련, 대전 정관계, 시민은 물론 대전시와 환경단체, 핵재처리실험저지30㎞연대는 '원자력연구원 해체'와 책임자 처벌 등을 요구하며 집단행동도 불사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핵재처리실험저지30㎞연대는 21일 오전 대전시 유성구 원자력연구원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원자력연구원의 방폐물 처리와 관리 허술을 규탄하는 한편 '원자력연구원의 즉각 해체와 정부 당국의 책임자 문책 등을 요구했다.

환경운동연합도 20일 오후 "원자력연의 비윤리성과 무책임한 범죄행위를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며 "이번 기회에 원자력연구원을 해체하고 재편하는 등 과감한 개혁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이런 불법 행위는 방사성 폐기물의 위험성을 가장 잘 아는 연구자들이 저지른 것으로, 무책임한 연구자 집단에 더는 관용을 베풀어서는 안 된다"며 사법당국의 엄벌을 촉구했다.

대전시도 원자력연구원의 불법행위가 공개되자, 권선택 시장 주재로 회의를 열어 규탄 성명과 함께 "대전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고 우롱한 처사를 용납하지 않겠다"면서 정부 차원의 철저한 수사와 처벌을 요구했다.

시는 "원자력연구원의 '가리고, 속이고, 철저히 짜 맞추는 등 기획되고 의도된 위법행위"라며 "가연성 폐기물 처분 시설과 용융로는 원자력연구와 직접 관련이 없는데도 시민의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는 만큼 해당 시설의 운영을 즉각 중단하고 폐쇄하라"고 주장했다.

시민들도 원자력연구원의 방폐물 무단 폐기에 불안감과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황 모 씨( 62. 대전시 유성구 신성동)는 "연구원들이 연구를 가장해 대전시민을 속일 수 있느냐, 이런 엉터리 안전에 입을 닫는 국무총리나 주무장관은 왜 그 자리에 앉아 있느냐"며 "당장 원자력연구원을 해체하라"고 개탄했다.

주부 김 모 씨 (42. 대전시 서구 둔산동)도 "대전이 원자력 안전에 취약하다, 방사성 폐기물 처리가 후진국이라는 얘기가 많았는데 사실로 확인되니 답답하고 화가 난다"면서 "이런 대전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대전시나 정치권, 정부 과학부처는 각성하고 반드시 안전대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사 최 모 씨 (54.세종시 아름동)는 "연구기관, 연구원들의 거짓과 조작이 드러난 만큼 이번 기회에 원자력연을 해체하고 재편하는 등 과감한 개혁이 필요하다"며 "아이들에게 대덕연구단지는 나라 발전에 이바지하는 국민을 위한 연구기관이라고 말해왔는데 이제 어떻게 설명할지 고민스럽다"고 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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