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고위 공직자, 고위법관 등 사회지도층과 일반 국민의 자산 격차가 빠르게 벌어지는 것은 최근 양극화 심화와도 무관치 않다.

저금리 탓에 부동산, 주식 시장으로 자금이 몰리는 가운데 예금 외 다양한 자산을 가진 사회지도층이 재산 불리기에 더욱 용이했기 때문이다.

정보를 접하기 쉬운 지위를 재산 증식에 활용했다는 지적도 있다.

사회지도층과 일반 국민의 재산 격차가 확대되면 국민을 위해 일해야 할 지도층이 계층의 이익을 지키는 정책을 수립하거나 법집행에 나설 가능성이 커진다.

민생과 괴리된 정책이 나오거나 민심을 읽지 못하는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고 국민 법 감정과 동떨어진 판결이 나온다는 지적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 국회의원 재산, 빈곤층의 34배…지난해 격차 확 벌어져

9일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대법원·헌법재판소의 2017년 정기 재산변동 공개 등에 따르면 최근 3년 간 우리나라 일반가구와 사회지도층의 순자산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사회지도층의 순자산은 2015년 발표(2014년 말) 기준 15억4천만원에서 2016년 16억2천400만원, 2017년 17억3천800만원이었다.

일반가구는 2015년 발표(2014년 3월 말) 기준 2억7천500만원에서 2016년 2억8천400만원, 올해 2억9천500만원으로 증가했다.

이로써 사회지도층과 일반가구와의 순자산 격차는 2015년 5.60배에서 지난해 5.71배로 커졌고 올해는 5.89배까지 확대됐다.

지난해보다 경기 불황이 극심했던 올해 격차 폭이 더 커진 것이다.

국회의원과 일반가구의 순자산 격차는 2015년 10.39배에서 2016년 11.33배, 2017년 12.62배로 계속 확대됐고, 고위법관 역시 같은 기간 7.19배에서 7.18배로 줄었다가 다시 7.77배로 벌어졌다.

반면 헌법재판관은 6.30배에서 6.20배, 6.17배로 줄었고, 고위 공직자 역시 4.70배에서 4.68배로, 2017년에는 4.59배로 다시 감소했다.

사회지도층들은 기존 보유자산이 많은 만큼 늘어나는 자산 규모가 일반가구보다 더 큰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사회지도층의 순자산 증가 속도가 저소득층 가구의 순자산 증가 속도를 압도하면서 자산 격차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고 있다.

소득 상위 20%인 5분위 가구와 사회지도층과의 순자산 격차는 2015년 2.50배, 2016년 2.59배, 올해 2.67배를 기록하는 등 완만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반면 소득 하위 20%인 1분위 가구와의 격차는 2015년 15.92배에서 2016년 15.30배로 줄었지만 올해는 다시 16.17배까지 껑충 뛰어올랐다.

특히 국회의원과 소득 1분위 가구의 순자산 격차는 2015년 29.52배에서 지난해 30.33배로 확대된 데 이어 올해 무려 34.68배까지 치솟았다.

전 사회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한 사회·경제적 약자와 사회지도층과의 거리가 점점 더 멀어지고 있는 것이다.

◇ 금융자산은 8배 이상 격차…부동산도 집계 차이 반영하면 10배 이상 차이

사회지도층과 일반가구의 자산을 세부 항목별로 비교해보면 주로 금융자산에서 큰 격차가 나타났다.

2016년 발표(2015년 말)된 정기 재산변동의 세부 항목을 독립언론 뉴스타파가 디지털화한 자료를 분석한 결과, 사회지도층의 금융자산 평균은 8억2천200만원이었다.

일반가구의 2015년 금융자산 평균은 9천300만원으로, 사회지도층이 8.84배 많았다.

국회의원의 금융자산 평균은 19억2천100만원을 기록해 일반가구보다 무려 20.68배 많았다.

사회지도층의 금융자산은 주로 주식과 예금이 차지했으며, 호텔이나 헬스장, 골프 회원권도 적지 않았다.

사회지도층의 부동산 자산 평균은 12억1천만원을 기록했다. 일반가구는 2억3천600만원으로 5.10배 차이였다.

부동산 자산의 격차가 뜻밖에 크지 않은 이유는 통계 집계 때 가치를 평가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통계청이 조사하는 일반가구의 부동산 자산 가치는 실거래가지만, 사회지도층 재산공개는 공시지가가 기준이다.

공시지가는 지역이나 주택 종류에 따라 시세의 절반에 못미치는 경우도 있을 정도로 실거래가와 차이가 크다.

이 같은 점을 고려하면 실제 사회지도층과 일반가구의 부동산 자산의 격차는 10배 이상이 날 수도 있다.

사회지도층은 일반가구보다 부채도 컸다. 부채 평균은 사회지도층이 4억5천만원, 일반가구가 6천260만원이었다. 지도층이 7.2배 많았다.

사회지도층이 일반가구보다 부채가 많다는 수치를 일반적인 의미의 '빚이 많다'로 해석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사회지도층의 부채 중 61%는 금융기관 채무였지만, 건물이나 토지 임대 채무도 31%를 차지했다.

소유 중인 건물이나 토지를 빌려주고 받아 추후 돌려줘야 하는 임대보증금도 부채로 잡힌다.

따라서 부채가 많다는 것도 일반가구와의 삶의 격차가 그만큼 크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 양극화·정보 격차의 단면…"자산 보유 과세 강화해야"

사회지도층과 일반 국민의 격차가 벌어지는 것은 최근 양극화 심화와 맞닿아 있다는 분석이 크다.

통계청에 따르면 소득 하위 20%인 1분위의 지난해 평균 순자산은 1억750만원으로 1년 전보다 1.3% 증가하는데 그쳤다.

전년도 증가율(9.7%)과 비교하면 사실상 제자리걸음 수준이다.

반면 소득 상위 20%인 5분위의 지난해 평균 순자산은 6억5천192만원으로 4.0% 늘었다.

초저금리 시대가 지속되면서 부동산 자산을 많이 보유한 계층이 부동산 투자나 임대소득을 올릴 기회가 커진 탓이다.

사회지도층이 정보를 얻기에 유리한 지위를 이용해 재산을 더 쉽게 불렸다는 시각도 있다.

안진걸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사회지도층 대부분은 편법적 부동산, 주식 관련 정보를 먼저 입수하고 투자한다"며 "일반인은 접할 수 없는 정보를 여러 수단을 동원해서 받고 있어 일반인들과의 재산 격차가 더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주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역시 "순자산 격차가 크고 빨리 벌어진다는 것은 고위 공직자, 국회의원, 고위법관들이 가진 고급 정보를 통해 자산을 빨리 불린다고 의심해 볼 만한 지점"이라며 "정치권력과 경제 권력이 잘 분립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고 꼬집었다.

사회지도층이 일반 국민의 처지에서 지나치게 괴리되면 서민의 시각에서 정책을 입안하거나 집행하기가 어려워진다.

더 나아가 국민을 대표해 법안을 만들고 법을 집행하거나 적용해야 할 사회지도층이 일반 국민을 위해 일하기보다 자신이 재산이나 기득권을 지키기에 급급해질 우려도 있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땅이나 건물 등 자산 보유에 대한 과세를 더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부동산 등 자산 보유와 관련한 경제정책을 하는 공직자를 대상으로 부동산 백지신탁제(고위공직자와 직계존비속의 자산 중 실수요가 아닌 부동산에 대해 국가에 처분을 맡기는 제도)를 도입하는 방안도 고려할 만하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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