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래호 작가 / 뉴스티앤티

눈물은 우리 내면의 삶이 지닌 모호한 부분들과는 완전히 구별되는 한 가지 일을 한다. 바로 우리 눈에서 새어나가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이다. 눈물은 의심의 여지 없이, 무언가가 일어났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눈물은 목격자들이다. 나는 눈물을 먼 나라에서 온 여행자로 생각하고 싶다.

미국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의 제임스 엘킨스 교수- 그는 2001년 신문과 잡지에 흥미로운 광고를 게재했다. 그림 앞에서 눈물을 흘린 경험담을 보내 주십시오- 미술사 전공인 엘킨스는 중세 말기나 르네상스, 18세기 당시 관람객들이 눈물을 흔하게 흘렸다는 기록을 다수 발견했다. 과연, 지금 사람들은 사정이 어떤지 궁금했는데 답장은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결과 4백 여 통이 넘는 답장이 쇄도했다. 1944년 동석한 허밍웨이가 허름한 술집의 벽화를 보고 울더라는 전언부터 엘 그레코의 '성모와 아기예수' 앞에서 왈칵 눈물을 쏟았다, 램브란트의 작고 암울한 작품이 결국 울게 만들었다는 고백 같은 것들이었다. 엘킨스는 이런 내용을 중심으로 '그림과 눈물'에 대한 책을 엮었는데 부제가 ‘그림 앞에서 울어본 행복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눈물- 우리는 우는 사람을 보면 대부분 어떤 불행한 일을 당해 슬퍼서 운다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었거나, 바라던 일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그렇다고 이해하는 것이다. 그런데 반대로, 기쁨이 넘쳐도 눈물을 흘리게 된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선수들이 국가가 연주되는 동안 눈물을 훔치는 광경처럼 말이다. 이와 같이 울거나, 웃는 행위는 동물의 세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인간만의 고유한 특성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 중에 ‘호곡장’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박지원은 처음, 중국으로 여행을 떠났는데 하늘과 땅이 맞닿은 드넓은 요동벌판에서 탄복한다. “참 좋은 울음 터로구나, 크게 한번 울어 볼 만하다!” 연암은 또 이렇게 말을 이었다. “천고의 영웅은 잘 울었고, 미인은 눈물이 많았다네. 사람들은 기쁨과 미움이 사무쳐도 울고, 슬픔과 사랑, 욕심이 사무쳐도 울게 되는 거지. 자고로 울음이란 천지간에 천둥과 같은 것일세.” 속담대로 ‘번개가 잦으면 천둥이 치는’ 법이다. 하늘의 음과 양, 두 구름이 만나면 번쩍번쩍 번개가 보이고, 우르릉 쾅쾅 천둥소리가 들리게 된다. 그러면서 비가 쏟아지기도 하고...박지원은 사람이 어떤 상황을 만나 반응하는 광경을 천둥치며 비 오는 현상에 비유한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알게 모르게 마음에 한을 쌓는다. 그것은 Ch. 보들레르의 '달의 슬픔'에 나오는 시구 대로 '파리한 달의 눈물 손 안에 길어 / 해의 눈 못 미치는 가슴 속에 간직한' 그것이리라. 가슴의 응달 그 한이 외물의 어떤 양달을 만나 북받쳐 녹으며 흐르는 눈물- 사람은 그 순간 해묵은 슬픔과 기쁨이 정화되면서, 행복한 감동을 느끼게 된다. 그것은 나를 떠나 먼 나라로 여행 갔던, 또 다른 자신의 분신과 하나 되는 기쁨의 재회일 것입니다. 제임스 엘킨스의 '그림과 눈물"은 차마 말 못 하는 자신만의 사연을 대변한 작품을 만나 벅찬 감정에 휩싸이는 이야기다. 그러면서 눈물이 말라버린 시대에 진정 울고자 작정한다면 이렇게 하라고 충고한다.

미술관에는 혼자 가라. 집중력 분산을 최소화하라. 충분한 감상시간을 가져라. 스스로 생각하라. 진정으로 보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보라. 자신에 충실하라.

지난 4월 초 예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의 '자코메티 한국특별전'에 갔었다. 스위스 출생의 조각가인 알베르토 자코메티(1901-1966)는 '인간의 실존을 응축한 것 같은 가늘고 긴 작품'으로 '생각하는 사람'의 오귀스트 로댕 버금가는 거장이다. 미술 서적이나 신문에서만 보던 '작품'은 실로 감동적이었다. 비록 엘킨스의 우려대로 관람객이 너무 많아 떠밀리다시피 감상했지만 '침묵의 방'에서 마주한 진품 '걷는 사람'은 바로, 황량한 인생길을 벌거벗은 채 묵묵히 걷고 있는 나 자신이었다. 얼핏 내 눈가에 는개가 내리는 듯싶었다. 그것은 다른 먼 나라에서 또 걷고 있는 여행자인 나를 만나는 순간이었다.

우리 모두는 몸과 마음이라는 자신의 캔버스에 작품을 그리는 화가들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숱한 그림들처럼 사람은 그렇게 다른 사람에게 ‘작품’으로 다가가는 것이다. 짜장, 우리는 서로에게 감동의 눈물을 흘리게 하는 그런 ‘그림’을 그리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붓과 물감으로 작품을 그리듯 모두, 두루, 아름다운 삶들이길 소망해 본다, 깊은 봄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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