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준원 박사 / 뉴스티앤티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을 둘러싼 구설수가 연일 회자에 오르고 있다. 김 원장이 더불어민주당 의원 시절에 펼쳤던 외유 관련 구설수다.

그 내막을 살펴보면, 단순한 구설로 보기엔 상식과 법적 테두리마저 넘어선 것 같다. 외유목적도 불투명하지만 피감기관의 지원을 받았다니 경악을 금치 못할 일이다. 국정감사 때도 피감기관의 크고 작은 지원을 피하기 위해, 의원들은 식사는 물론 각종 소소한 배려까지 거절하고 있다. 이처럼 피감기관을 조심스럽게 대하는 것이 상례다.

피감기관으로부터 지원을 받은 외유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참 낯 뜨거운 일이다. 게다가 인턴 여비서와 ‘나 홀로 외유’라니? 누가 봐도 선뜻 이해가 안 간다. 안희정 전 지사는 ‘나 홀로 외유’가 아닌 해외 순방팀과 함께 했음에도 수행 여비서 문제로 절단났다. 김 원장을 홀로 수행한 인턴 여비서는 6개월 만에 9급에서 7급으로 승진했다고 한다. 이 소식을 접한 젊은 네티즌들의 분노와 비난이 빗발쳤다. 의원실 내 직원들의 위상 관계 결정은 의원의 독자적 권한이겠지만, 그래도 뭔가 석연치 않다.

김 원장의 기이한 외유 행보를 구체적으로 짚어보자.

2014년 3월 한국거래소(KRX)의 부담으로 2박 3일간 우즈베키스탄 출장, 2015년 5월 우리은행 돈으로 2박 4일간 중국 충칭과 인도 첸나이를 방문 그리고 같은 달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예산으로 9박 10일간 미국과 유럽 출장을 다녀왔다. 관련 피감기관이 한두 곳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저 놀라울 뿐이다. 금감원장 자리는 도덕성은 물론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자리다. ‘갑질 외유’ 의혹을 말끔하게 정리하지도 못한 당사자가 무슨 배짱으로 개혁을 일궈내겠다는 것인지 참 답답하다.

김 원장은 참여연대 사무처장 출신이다. 오랫동안 NGO 활동을 했기에, 여타 기관으로부터 수많은 지원을 받아왔을 것이다. 그런 근무 환경 탓에, 피감기관의 지원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지도 모르겠다. 사태가 시끄러워지자 김 원장은 "국민의 기대와 눈높이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지적에 죄송스러운 마음이 크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국민 눈높이 운운하면서 법적 하자가 없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아울러 자신을 지원해준 기관에 대한 로비를 도와준 적이 없다고 언급했다.

여당도 거들었다. “혜택은커녕 불이익을 줬는데 이를 로비로 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생뚱맞은 주장을 내놓고 있다. 김영란법(부정청탁방지법) 통과 3개월 후에 KIEP와 우리은행의 지원을 받았으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다. 김 원장은 동법 통과 직전에 직접 나서서 법 제안설명을 했던 장본인으로, 김영란법의 목적과 제안 배경을 누구보다도 꿰뚫고 있을 터이다. 김영란법의 근본목적은 로비의 성공·실패 여부를 떠나 ‘로비 시도 자체’를 못 하게 하자는 데 있다.

사태가 심중한데도 청와대는 ‘실패한 로비’ 운운하고 있다. 이는 곧 피감기관의 로비 성격의 지원을 인정한 셈이다. 청와대로부터 무슨 언질을 받았는지 모르지만, 국책기관인 KIEP도 자신들이 김 원장에게 해외 출장을 부탁한 것이라는 해괴한 입장을 내놓았다. 김 원장을 살리려고 피감기관으로서의 부도덕성을 스스로 인정하고 나선 것이다. KIEP의 출장 요청 배경과 해당 기관을 살펴보니 가관이다. 김 원장이 “유럽을 방문한 것은 유럽지부를 설립하려는 KIEP의 요청에 따른 것”이라는 청와대의 입장표명은 그래서 더 궁색하다. 이런 사안이라면 KIEP가 독자적으로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는 일이다.

미국방문은 더 기이하다. 존스홉킨스대학 국제관계대학원(SAIS) 산하 한미연구소의 운영 문제점을 김 원장이 강하게 질타했던 모양이다. 이에 KIEP가 "직접 현장을 점검해보고 개혁의 방향을 잡아달라“고 요청해서 다녀왔다고 한다. 한미연구소 운영 건이라면 KIEP가 나서서 사태를 파악해서 보고하든지, 국정감사 때 상세하게 자초지종을 밝혀야 했다. 이런 사안은 일개 국회의원이 나서서 해결될 일도 아니고, 그런 목적을 위한 외유를 할 만큼 의원직이 한가하단 말인가. 강성 의원의 ‘갑질’에 주눅 든 KIEP의 답변도 참 옹졸하다.

내로남불,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내로남불도 수준과 기준이 어지간해야 납득이 간다. 청와대는 다시 살펴봐도 “해임에 이를 정도로 심각하지 않다”고 김 원장에게 거듭 힘을 실어줬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가 해임에 이를 정도인지 먼저 설명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이 납득하고 네티즌의 분노가 가라앉을 것이다. 이번 사태를 내로남불 식으로 덮어버리면, 우리 정치권에 아주 못된 전례로 남을 것이다.

청와대 주장대로라면 이젠 국회의원이 대놓고 피감기관으로부터 외유경비 지원을 받아내도 할 말이 없게 되었다. 청와대와 여당은 김 원장 감싸기에 급급하지만, 냉정하게 다시 짚어봐야 한다. 적폐 청산 목소리를 높이는 현 정권이 스스로 적폐를 쌓아가는 것은 아닌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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