펄펄 눈이 옵니다 바람 타고 눈이 옵니다 / 하늘나라 선녀님들이 송이송이 하얀 솜을 / 자꾸자꾸 뿌려 줍니다. 자꾸자꾸 뿌려 줍니다 // 펄펄 눈이 옵니다 바람 타고 눈이 옵니다 / 하늘나라 선녀님들이 하얀 가루 떡가루를 / 자꾸자꾸 뿌려 줍니다 자꾸자꾸 뿌려 줍니다

 

김래호의 글자그림「소리 音」(한지에 수묵, 70×70cm) 부분
김래호의 글자그림「소리 音」(한지에 수묵, 70×70cm) 부분

어제(22일)가 소설이었는데 15일 후면 대설입니다. 한 철에 6개씩 보름마다 갈마드는 24절기의 1년- 소의 해 2021년도 문득 그 20-21번째 절기에 당도한 것입니다. 애나 어른이나 겨울이면 즐겨 부르는 국민동요「눈」은 고 박재훈 목사님이 작곡하셨습니다. 「눈을 들어 하늘 보라」, 「지금까지 지내온 것」, 「어서 돌아오오」 등 자주 불리는 찬송가를 만드신 바로 그분입니다. 박목사님은 1922년생으로 평양 요한학교를 졸업하고 동경 제국고등음악학교에서 수학했으며, 美 웨스트민스터 대학에서 교회음악 석사 학위를, 캘리포니아 아주사 퍼시픽 대학에서 명예 인문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셨습니다.

올해 8월에 작고하신 박목사님은 한양대학교 음악대학 교수로 재직하시면서 한민족의 정체성을 고양하는「함성 1919」 등 다수의 오페라를 쓰셨는데 「어머님의 은혜」를 비롯해 「산골짝의 다람쥐」, 「송이송이 눈꽃송이」, 「시냇물은 졸졸졸졸」 등 동요도 많이 남기셨습니다. 그는 “음악은 철학이 있어야 하고, 역사성에 기초해야 하고, 시대적 배경을 반영해야 하고,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셨는데 그런 이념에서 한국의 시대적 감성을 대변하는 명곡들이 탄생한 것입니다. 

김래호의 글자그림「소리 音」(한지에 수묵, 70×70cm)
김래호의 글자그림「소리 音」(한지에 수묵, 70×70cm)

공자께서 무성에 가시어 현악기를 연주하며 환영하는 노래를 들으셨다. 선생께서는 빙그레 미소 지으시며 말씀하셨다. “닭을 잡는데 어찌 소 잡는 칼을 쓰느냐?” 자유가 대답하였다. “예전에 제가 선생님께 듣기로는 ‘군자가 도를 배우면 남을 사랑하고, 소인이 도를 배우면 부리기가 쉽다’고 하셨습니다.” 공자께서 화답하셨다. “제자들아. 자유의 말이 옳다. 아까 한 말은 농담일 뿐이다.” -『논어』제17편 양화陽貨 4

할계언용우도割鷄焉用牛刀- 평소 엄숙하고 과묵하던 사부께서 농담을 하셨습니다. 공구의 제자인 자유는 성이 언言, 이름은 언偃이었는데 노나라의 작은 고을 무성읍의 읍제가 되었습니다. 언언은 스승의 가르침 받들어 읍장이 되었으니 은혜도 갚을 겸 공문孔門들에게 과시할 속셈도 있었을 것입니다. 사부께서는 조촐한 자리면 그만인데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 부르는 성대한 연회를 마련했느냐고 떠본 것이죠. 제자들은 스승의 질타를 진담으로 받아들이고 긴장들 했겠지요. 하지만 종당에 극진한 접대를 한 자유는 ‘닭’이, 스승은 ‘소’가 되는 것으로 매조지 되었습니다. 

짜장 그날 ‘현가弦歌’의 광경은 어떠했을까요? 이런 궁금증은 제가 5년 전 귀향해서 『논어』를 정독하며 더해졌습니다. 금강정맥 민주지산의 충북 영동은 박연朴堧(1378-1458)선생의 출생지인데 우리나라 3대 악성의 한 분인 난계蘭溪는 조선 세종 때 12율관을 정하고, 궁중음악과 예법을 전면적으로 개혁한 음악가였습니다. 특히 피리笛 명연주가로 폭포 아래에서 연주하면 새와 난초들이 춤을 추었다는데 그곳이 바로 심천면의 박연폭포입니다. 분명히 난계선생은 그 누구보다 유가 예악론의 정수인 『논어』에 심취하셨으리라 보입니다. 

공자께서 노나라의 태사에게 음악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음악은 배워 둘 만한 것이다. 처음 시작할 때에는 여러 소리가 합하여지고, 이어서 소리가 풀려 나오면서 조화를 이루며 음이 분명해지면서 끊임이 없이 이어져 한 곡이 완성되는 것이다. -『논어』제3편 팔일 23

 

김래호의 글자그림「소리 音」(한지에 수묵, 70×70cm) 부분
김래호의 글자그림「소리 音」(한지에 수묵, 70×70cm) 부분

공자는 삶의 최고 경지를 음악에 비유했습니다. 실제로 공구는 연주가이자 평론가, 교사였습니다. “내가 위나라에서 노나라로 돌아온 뒤에야 음악이 바르게 되어 아雅와 송頌 이 각각 제자리를 찾았다.”(『논어』자한 14) 여기에서 아는《시경》의 ‘소아’와 ‘대아’를 가르키고, 송은 ‘주송’, ‘노송’, ‘상송’을 말합니다. 총 305편의 시가 실린 『시경』은 작자를 알 수 없는 고대 중국에서 불리어진 민요를 중심으로 편찬된 것입니다. 

공자의 음악적인 면모는 위나라에서 “경쇠를 두드리며 연주했다”(헌문편 42), “거문고를 타면서 노래를 불렀다”(양화편 20), “순임금의 음악인 소를 듣고 석 달 동안 고기 맛을 잃으시고, 음악을 하는 것이 이런 경지에 이를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술이 13), “옛사람들은 예와 음악에 있어서 야인처럼 질박했으나 후대의 사람들은 군자처럼 형식미를 갖추고 있다. 만일 내가 마음대로 택하여 쓸 수 있다면 나는 옛사람을 따르겠다”(선진 1) 등 『논어』전편에 자주 등장합니다. 

그렇다면 공자는 왜 그토록 음악을 높이 산 것일까요? 『논어』양화 18에서 이렇게 밝혔습니다. “자주색이 붉은색을 침해하는 것을 미워하고, 정나라 음악이 아악을 어지럽히는 것을 미워하며, 기민한 말재주가 나라를 뒤엎는 것을 미워한다.” 이는 같은 편 1장의 반문에 대한 자답입니다. “예禮가 어떻다, 예가 어떻다 말들 하지만, 그것이 옥이나 비단을 말하는 것이겠는가? 음악이 어떻다, 음악이 어떻다 말들 하지만, 그것이 종이나 북을 말하는 것이겠는가?”

고대의 예법에 따라 주고받던 대표적인 예물인 옥과 비단- 그것들의 많고 적음, 비싸거나 저가가 그 사람의 진정성을 대변하지는 못합니다. 아부로 빌붙으려는 자는 분에 넘치게 장만할 것이고, 작은 성의마저 표할 형편이 못되면 적어도 진심이 담기는 법. 정작 중요한 것은 악보에 없듯이 북이나 종은 도구일 뿐 음악 자체는 아닙니다. 곧 연주자의 손에서 가락이 풀려나는 것으로 최고가의 악기도 초급자에게는 그만한 소리를 내어 줄 뿐입니다. 

 

김래호의 글자그림「소리 音」(한지에 수묵, 70×70cm) 부분
김래호의 글자그림「소리 音」(한지에 수묵, 70×70cm) 부분

여기에서 브람스, 말러, 요하임 등 당대 최고 음악가의 연주회가 열렸던 비트겐슈타인궁의 ‘재벌 2세’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1889-1951)의 ‘언어게임론’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에 의하면 ‘언어’는 물리적인 기호의 배열이 아닐 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정신작용이나 세계의 그림도 아니며, ‘일정한 생활양식’과 ‘규칙’에 따라서 영위되는 행위일 뿐입니다. 이 ‘언어’에 공자의 ‘예와 음악’을 환치하면 뜻이 더욱 분명해지겠죠. 말과 예, 음악은 모두 저마다 마음가짐의 체현인 것입니다. 

자 이제 존 케이지의 피아노곡「4분 33초」를 감상해 보시죠. ...... 악보가 없는 ‘연주’ 시간에 무슨, 어떤 ‘소리’를 들었는가? 음을 음에 반환하라. 현실을 새롭게 인식하여 음악하는 것을 행동으로 돌려 각기 생활을 통해 미지의 현실과 접촉하면서 주체적으로 음악적인 화음을 발견해 나가라 ...... 무음의 유음이 바로 자신의 소리 그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음악 서술 속의 화성和聲이 참 부럽다. 높낮이가 제각각인 소리가 여러 악기에서 동시에 연주될 때 그 소리가 얼마나 오묘하고 얼마나 요원한지. 심지어 작곡가마다 달라서 슈배르트의 화성에서는 서로에게 호의적이지만 메시앙의 화성에서는 서로 경쟁하는 듯하다. 그리고 호의적이든 경쟁적이든 그들은 한데 어우러져 같은 방향으로 전진한다. 소설가 중에도 실험정신이 강한 사람들은 언어서술에서 화성을 추구하며 동일한 시간대에 다채로운 서술을 시도한다. 그럴 때 화성에 가장 근접한 방식은 대구를 이루는 문장과 단락이다. 하지만 그래봐야 근접할 뿐이지, 화성을 이룰 수 없다. - 위화(2019), 『문학의 선율 음악의 서술』머리말 화성과 비익조

1960년생인 중국의 위화余華는 장편소설 『인생』(1993)을 통해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올랐는데 음악평론가로서도 높은 평가를 받는 작가입니다. 그는 “음악이 음표의 하모니인 것처럼 문학작품도 어휘의 하모니다”라고 주창합니다. 그러면서 문학가로서 음악가에게 경의를 표하고 있는데 이는 소리 그 ‘말과 음’의 조화를 꿈꾸는 태도입니다. 기실 그 저본은 공자의 『논어』일 것입니다. “흥어시興於詩 입어예立於禮 성어락成於樂: 시에서 감흥을 일으키고, 예를 통해 자립하고, 음악에서 완성을 이룬다“ 공자의 이상적 대동사회- 만물과 만인이 조화로운 세상은 곧 음악적인 화성의 세계이니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20세기 음악의 거장 이고르 스트라빈스키(1882-1971)의 언표를 인용하면서, 아무쪼록 몸과 맘 두루 청안한 겨울 이어가시길 발원합니다.      

나는 음악의 목적이 인간이 자기 이웃, 나아가 존재와 화합하고 영적 교감에 이르도록 돕는 데 있다고 봅니다. -『음악의 시학』(1939) 1. 음악적 고백록

 

김래호 작가
김래호 작가

’글자그림 이야기‘의 김래호작가는 1959년 충북 영동 출생으로 서대전고, 충남대 국문과, 고려대 교육대학원에서 공부했으며, 대전MBC와 TJB대전방송, STB상생방송에서 프로듀서를 역임했다. 198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동화, 2020년 제20회 전국추사서예휘호대회 한문 부문에 입선했다. 산문집 『문화에게 길을 묻다』, 『오늘- 내일의 어제 이야기』를 펴냈고, 현재 고향에서 사람책도서관 어중간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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