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준원 박사 / 뉴스티앤티

평창 동계올림픽 폐막식에 참석한 북한 김영철 탓에 남남갈등은 더욱 거세졌다. 천안함 피폭 사건의 주범이 즉 적장이 우리 성(城) 내로 깊숙이 들어온다는 자체가 달갑지 않은 일이다. 하긴 개막 초부터 떼 지어 내려 온 북한 측 손님에 대한 문재인 정권의 관용적인 베풂을 보면, 김영철이라고 못 올 이유가 없을 것이다.

국제사회의 제재는 문 정권의 관용(?) 탓에 슬그머니 뒤로 물러나면서 전열이 흐트러졌다. 북미 간에 대화를 열어 갈 분위기가 형성될까 했던 기대도 사그라졌다. 이 와중에 문정인 대통령안보특보는 “대한민국 대통령은 군사주권을 갖고 있다. 대통령이 주한미군에게 나가라고 하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 이 어수선한 시기에 워싱턴에서 꼭 그런 발언을 해야했는가. 참 안타깝다.

특보라는 사람이 북한이 하고 싶은 말을 이런 식으로 대변해주니, 색깔론이 판을 치면서 우리 사회는 연일 치열한 갈등과 분열 속에서 아웅다웅하고 있다. 국가의 외교와 대북정책은 큰 틀에서 전략과 전술을 갖고 나서야 한다. 대통령의 주권행사와 미군 철수건은 국가안보와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다. 이런 무책임한 발언이 나오면 나올수록 나라가 어수선할 수밖에 없다.

김영철이 천안함 폭침의 주범일까. 이 문제는 주범 여부를 떠나, 사건 당시에 김영철의 직책을 따져보면 된다. 김영철은 천안함 폭침 여부를 결정짓는 책임 있는 자리의 인물이었다. 다시 말하면, 그는 누가 뭐래도 우리 군을 공격한 적장일 뿐이다. 정부도 그런 사실을 인정하기에 “대승적“관점에서 이해를 구한 것 아닌가. 그런데도 정보 관련 총책임자 김영철을 군사도로를 거쳐 평창으로 데려갔다.

독일이라면 어떻게 대처했을까? 통독 전에 서독은 동독 정부 인사를 초청할 때, 이들의 범죄행위를 기소유예할 수 있다고 법원 구성법에 따로 조항을 두었다. 통일 직전까지 범법행위를 한 자를 통일 후에 법대로 처리하겠다는 것이다. 서독체제를 위협하거나 반인권적 행위를 한 동독 군인과 동독 주민까지 서독의 법의 잣대로 처리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인 것이다. 이를 통해 서독은 동독에게 강력한 대처로 체제의 안전을 지켜낸 것이다.

국경선에 근무하는 동독 군인이 서독으로 탈출하려는 동독인을 사살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동독 정부의 명령에 따라 실행한 것이겠지만, 서독은 통일 이후에 이들을 색출해서 반드시 처벌하겠다고 단호하게 대처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동독 정부는 총격을 가한 동독 군인을 누구도 알 수 없도록 숨겨두었다. 이름도 바꾸고 거주지도 완전 다른 곳으로 옮겨 이들의 신분을 철저히 은폐시킨 것이다. 통일 직전 동독이 비밀경찰(Stasi) 자료를 대거 폐기한 것도 서독의 이런 방침과 무관하지 않다. 서독은 통독과정의 어수선한 틈에서도 Stasi 자료를 파기하는 자는 엄벌에 처벌하겠다고 천명한 바가 있다.

김영철은 일언반구 없이 북으로 돌아갔다. 워커힐호텔이 어떤 곳인가. 한국전쟁에서 횡사한 미군 워커 장군의 이름을 딴 그 호텔이다. 그런 호텔에 머무른 김영철의 심경이 어떨까? 우리 정부가 17층을 통째로 내주고 대접한 결과가 무엇인가? 남북 간에 뭔가 물밑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기대만큼 잘 풀리지 않는 것 같다. 어설픈 책략으로 상대를 달래거나 또는 퍼주기 약속이 없기를 기대할 뿐이다.

이제 잔치는 끝났다. 그런데도 훼손된 자존심의 상흔이 쉽게 아물지 못하고 있다. 천안함 피폭 용사 가족과 우리 국민의 속이 타들어 간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길이 없을 때가 가장 두려운 법이다. 나라 경제가 심상치 않게 굴러가는 마당에, 북한 눈치만 보는 것 같아 하루하루가 답답하고 불안하다.

북한은 동서독 통일과정을 철저하게 분석해두고 있다. 동독처럼 흡수통일 당하면 자신들의 처지가 어떨 것이라는 점을 익히 알고 있다. 서독이라면 김영철 같은 인물은 서독 내로 들어오지도 못할 뿐더러, 체포는 물론 법의 응징을 마땅히 받아야 하는 인물이다. 현 정부가 서독처럼 그렇게 강단 있게 못 할 것이라는 것을, 북으로 돌아간 김영철은 분명히 알고 있다. 참 안타까운 우리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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