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태 박사 / 뉴스티앤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대한민국헌법 제10조)

"…인종, 성별, 언어 또는 종교에 따른 차별 없이 모든 사람의 인권 및 기본적 자유에 대한 존중을 촉진하고 장려함에 있어 국제적 협력을 달성한다."(유엔헌장 제3조)

"인류 가족 모든 구성원의 고유한 존엄성과 평등하고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 세계의 자유, 정의, 평화의 기초가 됨을 인정하며,…기본적 인권과, 인간의 존엄과 가치, 남녀의 동등한 권리에 대한 신념을 재확인하였으며, … 인권과 기본적 자유에 대한 보편적 존중과 준수의 증진을 달성할 것을 서약하였으며,…"(세계인권선언 전문)

모든 사람이 인권을 갖고 있다는 말은 매우 당연한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인권이라는 말은 역사적 개념으로서, 인권을 기초 짓는 자유와 평등이란 개념은 18세기 근대시민혁명을 거치면서 등장하였다. 그 이전에는 소수의 특권만이 인정되던 시대에 불과했던 것이다. 특권의 시대를 끝내고 인권이 잉태되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인간’으로 대접받지 못한 사람들이 특권을 몰아내고 존엄성과 권리를 보장받기 위한 투쟁을 위한 도전과 시련은 필연적이었다. 인권의 역사는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하고자 ‘인간’으로서 대접받지 못했던 인류의 구성원들이 동등한 권리의 주체로서의 승인을 요구하는 과정이자, 이러한 권리를 보장받기 위한 사회적 조건을 마련하려는 투쟁의 역사였다.

인권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명확하고도 확정된 대답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이는 인권의 개념과 범주가 폐쇄적인 것이 아니라, 시대적․사회적 조건 속에서 규정되는 것이며 인권을 확장하고 새로운 인권개념을 창조해나가는 인권운동의 역사 속에서 새롭게 늘 변화되고 풍부해지는 역동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인권의 개념에서부터 인권의 주체, 인권의 내용과 범주는 늘 지배세력과 피지배세력 간의 긴장관계 속에서 변화되어 왔으며,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와 평등을 진정으로 구현해나가려는 노력 속에서 새롭게 정의되고 확장되어 온 것이다.

이러한 역동성에도 불구하고 인권은 문자 그대로 ‘인간이라는 단 한 가지 이유만으로 당연히 갖는 권리’로서 정의된다. 인권이 국가나 실정법 등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에 당연히 인정되는,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필수적인 권리라는 것이다. 여기서 인간다운 삶을 영위한다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는 삶의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즉, 인권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기본적인 권리이다. 인권은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이 침해되는 상황을 정의롭게 개선하려는 인간의 부단한 노력으로 형성되고 발전되어온 개념이다. 평등한 권리를 갖는 인간의 범위도 그러한 노력을 통해 확장되었고, 인권에 대해 바라보는 시각 역시 시대적 조건에 따라 변화해왔다. 인권을 보호하고자 하는 의지가 국제적으로 확인된 계기는 모순적이게도 유대인을 비롯해 집시, 장애인, 성소수자 등이 나치 정권과 그 협력자들에 의해 체계적으로 집단학살당한 역사적 비극을 목도한 후였다. 이러한 참상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유엔은 1948년 세계인권선언을 채택했다. 세계인권선언은 이전부터 각 나라별로 발전되어온 인권기준을 국제적인 차원에서 처음으로 집대성한 것으로, 인류 모두의 존엄과 권리에 대한 최소한의 보편적 기준을 담고 있다. 세계인권선언은 오늘날 사회권과 자유권이라고 부르는 다양한 인권을 포괄하고 있으며, 이후 국제사회는 유엔을 통해 사회권, 자유권, 인종차별, 고문, 여성차별, 아동, 이주노동자, 장애인, 강제실종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국제 인권조약을 발전시켜왔을 뿐더러, 수많은 국가의 헌법에 영향을 미쳤고 각국의 기본권의 근간을 구성해왔다. 대한민국 헌법도 제10조에서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가진다’고 선언하고, 그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가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지키고 실현하기 위함에 있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제11조에서 제37조까지 평등의 원리, 자유권, 참정권, 사회권, 청구권 등을 규정하고 있다. 국민 개개인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생활영역에서 자유롭게 개성을 신장하고 최소한의 물질적인 삶을 보장받을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인간의 존엄과 가치가 실현된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의 존엄과 가치는 헌법의 이념적 출발점이자 핵심적 가치이다. 나아가 인간의 존엄성 보장은 국가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국가는 그 자체로 독자적인 가치가 있거나 목적이 아니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더욱 잘 실현할 수 있는 도구의 기능을 가질 뿐이다. 국민의 생명을 경시하는 국가, 국가의 이익을 위해 국민의 희생을 강요하는 국가가 정당성을 갖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인간이 그 신분이 무엇이든 간에 존엄성을 가진 존재라는 관념도 근대이후에서야 등장한 것이고, 인간의 존엄성이 무엇을 의미하는 가도 역사적․사회적 조건에 따라 달리 규정될 수밖에 없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인간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자신의 정체성을 실현하고 자율성을 확보해 나가고자 하는 존엄성을 갖고 있는 존재라는 가치는 광범위한 동의를 획득하고 있으며, 초역사적인 성격을 확보하고 있다. 이러한 인간의 존엄성은 구체적인 법적 권리로서, 혹은 한 국가나 공동체, 국제사회가 합의한 규범적 질서 속에서 마땅한 도덕적 권리로서 승인됨으로써만 보장되고 발현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인권이란 존엄한 삶을 위해 모든 인간이 당연히 향유해야 할 권리인 것이다. 인권은 모든 사람은 성별, 연령, 인종, 피부색, 출신민족, 출신지역, 장애, 신체조건, 종교, 언어, 혼인, 임신, 사회적 신분, 성적지향, 정치적 또는 그 밖의 의견 등에 관계없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가진다는 가치에서 비롯된 것이다. 모든 사람을 자율성을 가진 평등한 인격체로 존중하고 공정하게 대우하는 것이 인권의 바탕을 이룬다. 인권은 매우 일상적인 개인들 사이의 관계에서부터 학교, 일터 및 공공기관 등에서 일어나는 일까지 우리 생활의 매우 다양한 면들과 관계가 있다.

인권은 자유와 평등을 핵심적 가치로 추구한다. 인간이 존엄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평등과 자유 모두를 필요로 하며, 평등과 자유는 서로 다른 것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이를 권리의 개념으로 표현하면 자의적 권력의 남용에 의한 ‘공포나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자유권과 생산수단의 소유불평등에 다른 ‘빈곤과 착취’로부터 벗어나 인간다운 생존을 유지할 수 있는 권리로 말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자유와 평등은 현실에서 뗄레야 뗄 수 없는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으며, 자유 없이 평등이 진척될 수 없고, 평등 없는 자유란 소수의 특권에 불과하다. 소유와 권력, 지식의 행사를 집단적으로 조직하는 과정에서 자유와 평등을 동등하게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인류의 계속적인 과제이다.

누구나 자신의 존엄성을 유지하기 위해 보장받아야 할 것이 바로 인권이기 때문에 인권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누구에게나 차별 없이 평등하게 보장되어야 한다. 모든 특권에 대한 도전으로부터 성장해온 인권은 인종, 성, 종교, 장애, 피부색, 사회적 출신, 정치적 의견 또는 사상, 재산 등에 따른 어떠한 차별도 없이 누구나 보편적으로 향유해야 할 권리가 바로 인권인 것이다. 이러한 보편적 성격은 인권의 주체로 하여금 실질적인 보편화를 위한 투쟁에 나서도록 하는 근거를 제공해왔다.

인권을 누리는 주체로서의 인간은 이제 더 이상 특권적 질서에 종속된 대상이 지위가 아닌, 적극적인 행위자의 지위에 서게 된다. 누구든 자유와 평등이 실질적으로 보장되는 사회적 관계를 요구하고 만들어나갈 수 있는 권리를 지닌다.

한편, 국가의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국민주권’의 원리에 기반한 근대적 정치체제는 국가의 존재이유이자 목적으로서 국민의 인권을 보장해야 할 책임을 지게 되었다. 그리고 국민은 국가에 대해 인권의 보장을 요구할 당연한 권리를 갖고 있으며, 이러한 국민의 인권을 억압하는 국가권력은 더 이상 정당성을 획득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인권은 국가권력의 정당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됨과 동시에 국가권력의 자의적 남용을 견제하고 권력행사의 한계를 규정짓는 중요한 잣대가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국민의 인권보장이라는 본질적 의무를 망각한 국가권력에 대항하여 새로운 정치체제를 구성할 수 있는 권리, 이른바 ‘저항권’은 근대 이후 핵심적인 권리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아 왔다.

인권은 노예제, 국가의 폭력, 및 사적 폭력, 식민지화, 성의 불평등 및 여성에 대한 지배, 임노동의 착취, 교육 및 의료 등에 대한 접근의 차별, 인종주의 등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고 인간을 ‘인간’에서 배제하는 압제적임 위계적인 질서에 대한 투쟁을 필연적으로 동반한다. 인권의 역사는 기존의 사회질서를 다시 문제 삼을 것을 항상 적을 전재한다. 또한 그러한 역사적 과정을 통해 인권은 확장되어 왔다.

인권의 주체인 인간은 추상적인 개인으로서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사회적 관계와 공동체적 삶의 공간 속에서 살아가는 구체적인 개인이다. 따라서 나의 인권과 타자의 인권, 나의 인권과 공동체의 인권, 한 공동체의 인권과 다른 공동체의 인권은 상호의존한다. “한 사람의 인권이 보장되지 않는 것은 전체 공동체의 인권이 보장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라는 말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다른 사람이나 공동체의 희생을 대가로 추구되는 인권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인권이라고 볼 수 없다. 또한 2차 세계대전의 경험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다른 사람이나 공동체의 인권이 침해당하는 현실을 묵인하거나 이에 동조할 때 결국 나의 인권까지도 침해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인권의 상호의존적 성격에 따라 특정한 개인이나 공동체의 인권은 다른 사람이나 공동체의 인권을 보장하는 데 필요한 만큼 일정한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부터 권리와 필연적 관계를 맺고 있는 의무의 개념이 생겨나는 것이다. 인권에서 말하는 의무란 흔히 국가가 국민 개개인에게 강제하는 의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인권이 침해되는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연대’하여 모두의 인권이 존중될 수 있는 질서와 사회적 부와 자원의 재분배를 위해 노력하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인권으로서 인간의 존엄과 가치는 우리 모두가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우리 헌법에서도 가장 앞자리에 위치하고 있는 기본권 중의 기본권이다. 그럼에도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는 가장 낯설고 멀리 떨어져 있는 것으로 느껴지는 개념이기도 하다. 국가가 세우는 모든 정책과 활동은 그 주파수를 “인간의 존엄성”에 민감하게 맞추어야 한다. 그것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의 선언이 헌법의 최고 이념이자 국가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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