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태 박사 / 뉴스티앤티

한국 사회는 국제결혼 가정의 증가와 외국인 노동자들의 지속적인 유입으로 빠르게 다문화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2015년을 기준으로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장기 체류 외국인, 귀화자, 외국인 주민 자녀를 모두 합하면 174만 1,919명이다. 이는 우리나라 전체 주민 등록 인구(5,133만 명) 대비 3.4%에 해당한다. 국제결혼이 전체 결혼의 10분의 1에 달하고, 농촌 지역의 경우에는 절반에 육박한다. 신생아 20명 가운데 1명은 다문화 가족 출신이고, 전체 다문화 가족 자녀 수는 20만 명에 이른다. 2020년이 되면 청소년 인구의 20%가 다문화 가족 출신이 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우리나라는 급격한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으며, 출산율은 OECD 국가 가운데 최저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우리의 다문화 가족 자녀들은 대한민국을 지탱해 나가는 데에 있어 절대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우리 사회의 구성원임에 틀림이 없다.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사회에서 우리 아이들이 피부색이나 부모의 모국에 상관없이 마음껏 미래를 꿈꾸며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 때, 우리의 미래도, 대한민국의 역사도 지속가능하다고 본다.

따라서 우리의 순혈주의 민족 신화는 문제점을 내재하고 있다. 단일민족이란 고정관념은 사실 일본의 식민지화에 대항하기 위해 우리 민족이 자가 생산한 측면이 있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은 조선을 강제 병합하고 성씨를 갈아 치우며 우리말과 문화를 말살하려고 했다. 이 시기에 단일민족이란 믿음은 국민적 단결을 불러일으켜 일본에 저항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하지만 우리가 자랑스럽게 여기는 단일민족 신화 혹은 순혈주의 민족신화는 사회적 차별에 따른 불평등을 통해 사회통합이라는 헌법적 자치를 해치는 적지 않은 문제를 낳고 있다. 단일민족이라는 믿음은 우리 자신을 순혈주의이라는 굴레 안에 가두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현행 헌법에는 민족이라는 표현이 3곳에 나온다. 전문에는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한다고 하고 있고, 제9조는 “국가는 전통문화의 계승·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제69조는 대통령 취임에 즈음하여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라고 선언할 것을 정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민족이라는 개념의 사전적 의미는 ‘일정한 지역에서 장기간에 걸쳐 공동생활을 함으로써 언어·풍습·종교·정치·경제 등 각종 문화내용을 공유하고 집단귀속감정에 따라 결합된 인간집단의 최대단위로서의 문화공동체를 가리키는 말’을 일컫는다. 이 말은 다의적이어서 국민·부족·종족 등과 혼동되는 경우가 많으며, 또 실제로는 이들과 부분적으로 중복되는 요인도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민족을 한 조상의 핏줄을 같이 이어온 혈연 공동체로 받아들이는 이들도 있다. 따라서 민족을 한마디로 정의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민족이라는 개념은 민족주의라는 정치적 이념을 동력으로 하여 표출되는 성향이 있다. 양자를 분리하여 민족이라는 개념을 설명할 수 없는 바, 세계사적 측면에서 민족주의는 외세에 대항하는 민족의 자주·자립을 위한 정치적 운동의 성격이 강하다. 따라서 민족주의는 상대적이고 배타적 성격이 내재된 사상이다. 우리나라 근대사에서도 민족주의는 외세의 침략으로 민족적 자주권이 상실되어가는 과정에서 발생하였고, 위험한 세력으로 간주되는 외세를 배격하는 성격을 가지며, 우리 민족의 자주권(독립)을 지키려는 운동이다. 우리나라에서 민족주의 운동은 대체로 강화도조약(江華島條約 1876)을 기점으로 싹트기 시작한다.

우리나라에서 민족이라는 개념과 민족주의라는 사조는 외세에 대한 배척과 일제로부터의 해방, 그리고 해방이후 국가의 자주적 번영을 위한 구성원의 단합이라는 정치적 목적에서 활성화 되었고, 이는 대한민국임시정부헌법인 대한민국임시헌장과 건국헌법에 민족이라는 단어를 쓴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대한제국의 헌법인 대한국국제에서는 민족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 이러한 의도에서 시작된 헌법상의 민족이라는 단어는 현행헌법까지 그 명맥을 유지해 오고 있다.

그러나 민족이라는 개념이 집단 구성원의 유전자 형태로 구분 지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보다 더 모호한 문화라는 기준을 들이밀거나, 한국어라는 의사소통수단을 강조하더라도 국제화시대로 대변되는 대외적 정세와 다문화 사회로 접어든 대내적 상황에 봉착한 우리나라의 작금의 현실에서는 살아있을 수 없는 개념이 되고 말았다. 특히나 ‘단일민족’이니 ‘한민족’이니 하는 말은 금기시까지 되고 있는 실정이다.

국가통치체제와 기본권 보장의 기초에 관한 근본규범으로서 국가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헌법에서도 일반적인 사전적 의미의 ‘민족’이라는 단어를 고수하기에는 그것이 이제는 너무나 낡아 보인다. 또한, 이미 우리나라는 다문화사회에 진입했고 이는 점점 심화되어가고 있다. 전통적인 한민족 중심의 민족적 민주주의적 사고나 규범은 다문화사회의 급속한 전개에 부응하여 국가로서의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환되어야 할 것이다. 이제 세계화, 국제화, 정보화 시대에 있어서 헌법은 당해 국가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징표이다. 그렇다면 그 헌법에서 이와 같은 시대적 흐름을 반영하는 것은 당연한 순리이다. 다른 한편 민족주의적이고 속인적인 현상은 인류보편적인 상황에서 예외적일 수밖에 없으며, 그에 따라 국적법에서도 오히려 속인주의적 경향은 약화되어 가고 있다. 더구나 다문화사회의 진입은 속지주의적이고 민족주의적인 상황의 약화를 부채질한다. 따라서 민족적 민주주의도 일정한 한계에 부닥치게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국가의 정체성은 새로운 모색이 불가피하다.

다양한 구성원을 우리사회에 포용하여 진정한 사회통합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에 대해 진지한 논의가 있어야 한다. 따라서 헌법에서 쓰이는 민족이라는 단어의 개념을 우리나라 현실에 합치되도록 재정립 하던가 이를 대체할 다른 무언가를 찾아야 할 것이다. 정치적 색채가 강한 국민이라는 개념 이외에 국가 구성원 모두를 감성적으로 따스하고 정답게 포용할 수 있는 사회통합적 개념이 필요하다.

민족주의는 만들어진 것으로, 하나의 극복되어야할 개념이다. 우리나라에서 민족이라는 개념이 언급된 것이 불과 한 세기에 지나지 않는다. 민족주의는 근대화라는 혁명적 위기에 대한 답으로 제시된, 독창적으로 만들어진 사회적 발명으로 간주될 수 있다. 일제강점기와 남북분단이라는 우리 현실에서 민족이라는 개념은 국가의 독립과 분열을 막기 위한 아주 유용한 도구로서 작용하였다. 최근 우리나라는 외국인과의 결혼 및 귀화 등이 늘어나면서, 민족주의를 버리거나 극복해야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으며, 유엔에서까지 단일민족설은 인종차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을 한바 있다.

그러나 남북통일이 우리가 이루어내야 하는 헌법적 과제라면 통일이 될 때까지는 도구적인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서 민족주의의 필요성은 아직도 남아있다고 본다. 게다가 지역은 지역대로 갈리고 정파는 정파대로 분열된 국내정세와 중국·미국·일본 등 강대국과 대면한 국제정세에서 민족 개념은 필요에 의해 조작된 신화일지라도 아직 까지는 그 유용성이 있어 보인다. 따라서 현행헌법에 민족이라는 표현과 개념이 사라지지 않는 한 우리도 헌법에 나오는 민족 개념을 사회통합을 재고하는 차원에서 해석해 내야한다. 기실 한국에서의 민족주의는 그것이 어떤 가치에 의해 판단되든지 국가가 어려울 때마다 민족의 단결을 가져와 난국을 극복하는 큰 힘으로 작용하였으며, 조국통일 이라는 헌법적 과제를 설명하는데 이념적으로나 운동사적 측면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세계화 시대에 따라 다문화사회로 접어든 현시점에서 우리의 민족과 민족주의 개념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감성적으로 가지고 있는 민족에 대한 환상은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국민통합과 국제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위상을 높이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또한 사회적․정치적 안정에 위험 요소가 될 수도 있다. 또한 민족 개념의 재정립을 넘어서 이를 대체할 표현을 찾아내는 것도 생각해 볼만하다.

민족 개념을 혈통이나 피부색 또는 언어에서 찾지 않고 민족공동체에 기꺼이 자신을 귀속시키고자 하는 민족 성원의 주관적 의지에서 찾는 다면 주관적 기준으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들 의식’이나 '우리들로의 귀속의식’을 낳는 연대감이다. 따라서 다문화 사회에서도 그 구성원들이 대한민국 국민이 되기 위한 주관적 의지만 있으면 민족공동체의 일원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혈통주의에 근거해 이제까지 우리정서를 지배해온 원초적 입장을 배제하고, '우리들 의식’이나 '우리들로의 귀속의식’을 낳는 연대감적 입장으로 민족 개념을 정립한다면, 헌법상 민족이라는 개념은 다문화 사회에서도 그 해석이 가능하겠다.

그러나 우리헌법에 나오는 민족개념에 대한 이러한 해석이 억지스럽고 어색하다면 국민이라는 표현대신 헌법에서 국가 구성원으로서 일반적으로 쓰이는 국민이라는 개념을 쓰더라도 크게 문제될 것 없으나, 감성적으로 따스하고 정답게 모든 구성원을 통합적으로 포용할 수 있는 개념이 헌법에서 필요하다면 민족을 대체할 새로운 개념으로 국가와 사회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주체로서의 개인 또는 집단을 가리키는 시민이라는 개념을 생각해 볼만하다.

보통 시민이라고 하면은 일반적으로 시(市)라는 행정단위의 구성원으로서 주민을 이야기하는 것이 상식이나, 시민의 사전적 의미는 정치적 관점에서 민주주의적 자치를 통치의 기본질서로 하는 특정한 정치공동체에서 그 공동체가 보장하는 모든 권리를 완전하고도 평등하게 향유하는 개별 구성원을 가리킨다. 이 권리에는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기본권과 아울러 그 공동체의 정치적 의사결정에 능동적으로 관여할 수 있는 참정권이 포함되는 것으로 시민의 존립 상황은 국가와 밀접하게 연관되어있다. 인류 문명사에서 시민의 원형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 찾을 수 있는 것으로 고대 사회에서는 일종의 특권 계급으로 존재하였고, 근대에는 부를 축적한 부르주아 계급으로 시민 혁명을 주도한 계층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시민은 대다수의 사회 구성원 전체를 의미하기에 이른다. 20세기말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시민개념은 부르조아지와는 전혀 다른 의미와 맥락에서 사용되고 있다. 또한 시민이라는 개념은 그 사전적 의미가 갖는 정치적 색채를 초월하여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그 구성원의 정체성을 따지지 않고 다양한 의미를 함의한 체 사용되고 있다. 외국인, 여성, 소수 인종, 언론, 성적 소수자, 인권, 노인, 교육 등 각종 사회 문제와 연관된 시민사회단체들이 그 예이다. 즉 시민이라는 표현은 우리사회의 모든 분야와 모든 구성원을 아우를 수 있는 폭넓은 개념으로 자리 잡고 있다. 시민이라는 용어는 정치⋅경제⋅사회⋅문화적 활동의 주체의 개념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으며, 프랑스나 미국헌법에서는 이 시민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시민의 개념이 정치적 주체의 개념으로 등장한 것은 1960년 4⋅19혁명 이후라고 볼 수 있다. 이후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과 1987년 6⋅10시민항쟁을 거치면서 시민 개념의 내포가 더욱 풍부화 되었다. 시민운동, 시민사회, 시민단체, 시민참여 등의 개념과 용어들이 사회에서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여기에서의 시민 개념은 국가와 사회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주체로서의 개인 또는 집단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시민의 개념과 그 쓰임이 이 정도에 이르렀다면 우리헌법도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도 시민이라는 표현을 국민을 보완하는 민족개념 대용의 법적 개념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조심스럽게 생각해 볼만하다.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시민개념은 기존의 혈통중심의 민족개념을 초월하여 인종과 피부색을 불문하고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모든 구성원을 아우를 뿐만 아니라 인종의 폭을 확장시키면 우리 사회에 생활근거를 가지고 살고 있는 영주권자로서 외국인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사용할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우리나라 출신의 해외 영주권자나 시민권자까지도 포함함으로 인하여 다각적인 사회통합을 실현하기 위하여 상당히 효율적인 용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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