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준원 박사 / 뉴스티앤티

서독의 건국 초, 연방의회에서 여야는 10여일에 걸쳐 대 동독정책을 놓고 밤낮으로 토론을 벌였다. 백가쟁명식 토론이었다. 여야가 간에 타협이 안 보이자, 답답한 나머지 서독 초대 총리 아데나워(Konrad Adenauer)는 “이 나라가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나?라고 외쳤다.

당시에 80대인 아데나워는 ”나를 활용하라,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내가 죽고 나면 나를 활용할 수 없다.“ 여야는 노 지도자의 진정성을 귀담아들었고, 서독의 앞날을 함께 걱정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서독의 대 동독 정책이다. 이후 정권이 바뀌면서 빌리 브란트(Brandt)는 동방정책 그리고 다시 정권이 바뀌면서 헬무트 콜(Kohl) 총리 때 통일이 완성되었다.

작금의 우리의 처지는 어떤가.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는 진정한 지도자로 추앙받는 자도 없고, 원로 취급받는 지도자 역할도 안 보인다. 정당은 물론 국민도 패를 갈라 서로 아웅다웅하는 꼴이다. 정권이 바뀔때 마다, 이전 정권 흔적 지우기에 급급하니 대북정책도 함께 출렁거린다. 정책의 원칙과 방향도 정권의 입맛에 따라 바뀐다. 통치 철학도 대북정책도 유약하기 짝이 없으니 임시방편식으로 북한을 대응해왔다.

“바람 앞 촛불처럼 남북 대화 지켜내야”한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국민 호소도 효력이 안 보인다. 횃불 들고 덤벼도 어려울 판국에 촛불이라니. 북한은 2차례에 걸쳐 일방적 결정을 통보했다. 그것도 한밤중에 알려줘 우리 정부가 대응조차 할 여유를 주지 않았다. 상대를 무시해도 정도가 있지, 이건 완전히 안하무인 격이다. 자유민주주의 체제하의 언론의 속성을 잘 알면서도 북한은 자신들을 비판하는 우리의 언론 보도를 생트집 잡고 있다. 협상을 어지럽혀 더 큰 이득을 챙기겠다는 북한식 협상의 민낯이다.   

평창올림픽 관련하여 남북한이 합의한 내용을 보면, 우리 정부의 성급함과 준비 부족 및 자존심 상실이 역력하다. 문 정권은 북한과 미국의 전면 협상을 위한 마중물 또는 가교 역할을 염두에 둔 것 같다. 그런 속셈이기에 북한의 요구를 다 들어주고 한술 더 떠 비위 맞추기에 급급한 꼴로 전락했다. 국민감정과 특히 젊은 층의 반감이 급상승하면서 문 대통령의 지지도가 추락 중이다. 협상 초부터 단추를 잘못 꿴 결과다. 정부가 때늦은 실수와 준비 부족을 인정했지만, 평창은 이미 김이 빠져버렸다.

문정인 대통령 특보는 "문 대통령은 통일보다 평화를 더 중요한 목표로 생각한다"고 언급하면서, 북한이 평창에서 벌이는 체제선전도 이해해주자고 부연했다. 참 너그럽고 만사가 태평한 분석이다. 학술세미나에서나 이런 이상적인 주장이 가능하다. 문 특보의 주장은 객관적으로 보더라도 친북-반미적 시각이 농후하다. 우리가 잘 대해주면(퍼주면?) 북한 스스로가 변할 것이라는 이상주의적 관점이다. 지금은 힘들더라도 언젠가는 북한과 손잡고 한미동맹을 깨트려야 한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허나, 현실은 얼마나 긴박하게 흘러가는가. 트럼프 대통령은 연두교서에서 북한을 적시했다.

"북한 정권보다 더 자국민을 철저하고 잔혹하게 억압하는 정권은 없다"고 단언하면서, 이전 정부처럼 실수를 허용하지 않겠다고 천명했다. 미국은 남북한이 잘 해보라는 덕담을 내놓았지만, 그렇게 속고도 아직도 정신 못차렸느냐는 비아냥이 묻어난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핵은 곧 미국공격용이라는 것을 빌미로 북한 옥죄기에 강하게 나설 것이다. 우리 정부만 중간에서 어정쩡한 딱한 처지다.

시간이 갈수록 여론도 심상치 않고 북한은 툭하면 합의를 뒤틀고 있다. 문 대통령은 속이 타들어 갈 것이다. 자존심도 내려놓은 채 북한의 주장을 열심히 반영하려는 진정성도 별 소용이 없다. 협상 초부터 우려되었던 것이 가시화된 것이다. 평창 개막식의 김을 빼버리려는 북한의 대규모 열병식 관련하여 아무 말도 못하는 게 통일부의 입장이다. 순진하고 어정쩡한 정부의 태도가 정말 못마땅하다. 문 대통령 못지않게 국민의 속도 타들어 가고 있다.

정말, 이 나라가 어디로 가고 있나? 되묻지 않을 수 없는 나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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