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태 박사 / 뉴스티앤티

민주주의에서 정치적 의사결정은 궁극적으로 국민에 의하지만, 적절한 의사결정을 이루려면 그 전제로서 충분한 정보와 거기에 기초를 두는 논의가 필요하다. 이러한 정보의 공유와 논의를 이루기 위해서는 표현의 자유는 필수 불가결한 권리이다. 말하자면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고 있으며 정치적 표현의 자유는 더욱 그러하다.

현행 헌법과 법률은 공무원에게 정치적 중립을 요구함에 따라 ① 공무원의 정당, 정치단체 가입 ② 정당, 정치단체에 대한 지지· 반대 ③ 정치적 의견을 발표하거나 신문 등 간행물에 게재하는 것을 정치적 행위로 보고 전면 금지하고 있으며, ④ 공무원은 공무 이외의 일을 위한 집단행위도 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문제는 이러한 것들의 개념이 너무 넓다는 데 있다. 이러한 제한은 공무원의 표현의 자유를 가로막는 구실을 하고 있다. 공무원들이 정치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이 과연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바람직하기만 한 것인가에 의문이 제기된다. 3·15 부정선거나 12·12 군사 쿠데타, 광주항쟁 등과 같이 권력에 의해 헌법과 국민의 기본권이 파괴 될 때 공무원에게 침묵만을 강요한 것이 옳았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해 보면서, 민주주의를 지켜내는 보루로 공무원들에게 어느 정도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는 것이 헌법과 국가를 수호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우리 사회가 과거에 비해 어느 정도 민주화되었다고 본다면, 공무원의 정당가입과 같은 적극적인 정치행위는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정치적 견해를 표명할 자유는 보장할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 그것이 '모든 국민'에게 표현의 자유를 보장함으로서 민주주의를 지탱하고 있는 헌법의 정신에도 부합할 듯싶다.

우리나라에서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이 명문화된 것은 3․15부정선거 이후 제3차 개헌에 의해 헌법 제27조에서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과 신분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 된다'는 규정을 둔 이후부터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현재 한국의 경우 공무원이 정치단체의 활동이나 선거에 관여하는 것을 광범위하게 금지함으로써 상당히 엄격하게 정치활동을 금지하고 있는 바, 이는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에 관한 여러 가지 필요성(공익의 증진, 행정의 능률성, 자율성, 안정성, 부패의 방지, 행정업무의 계속성, 정치체제 내의 세력 균형 도모, 공명선거 기대 등) 중 공명선거와 부패방지를 그 목적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가 공무원의 정치적 활동에 대한 제약이 엄격한 것은 과거 정권에서 공무원들의 정치적 활동으로 인한 폐단, 즉 선거에 대한 부당한 개입과 이로 인한 행정의 중립성 침해 및 공익의 훼손 등의 요인에 기인한다. 결국 국민과 공무원의 의식 수준 및 민주정치 실현의 성숙도에 의해 정치적 활동이 엄격하게 제약된다고 볼 수 있다.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은 엽관주의의 폐해를 극복하고 행정의 능률성과 계속성, 전문성, 공평성을 확보하고, 인사행정의 실적주의 확립 위해서 필수적인 제도이다. 그러나 공무원들의 정치 활동 제한은 다른 한편에서는 민주주의 정치 체제에서 특정 집단의 정치적 자유만을 제한하는 것은 불공평하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첫째, 정치중립제도가 너무 엄격하다. 민주국가에서 공무원이 정치중립을 지켜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우리처럼 정당가입조차 금지하고 있는 나라는 드물다고 본다. 이러한 규제는 대부분의 공무원과 공무원법을 준용하고 있는 공공기관의 임직원, 심지어는 사립학교의 교원까지도 금지대상이 되고 있다. 따라서 이들 집단의 정치제한은 정치의 질적 향상을 위해 바람직하다고는 볼 수 없다.

둘째, 정치중립제도가 너무 엄격한 것이 문제이기는 하지만 이를 잘 지키지 않는 것은 더 큰 문제라 할 수 있다. 과거에는 정권이 영구집권을 위해 공무원들로 하여금 선거에 개입하도록 하였는 바, 지방자치제가 시행되면서 공무원이 논공행상을 받기 위해 오히려 특정후보를 미는 것이 관행으로 굳어가고 있다.

셋째, 정치중립이 현실적으로 지키기가 어렵고 정치참여가 어느 정도 필요하다면 이를 전향적으로 고쳐야 할 것인데 그러한 생각조차 갖고 있지 않는 것이 문제이다. 공무원은 일반국민에 비해 전문지식을 갖춘 집단임을 감안할 때, 공무원의 정치활동제한은 정당의 정책개발 면이나 우수인력의 충원 면에서 손실이 되고 있다.

넷째, 공무원의 정치활동제한은 기본권제한이라는 문제가 따르고 있다. 정치적 중립 못지않게 국민의 일원으로 당연히 누려야 할 참정권보장도 중요하다는 점에서 정치중립제도에 비판이 가해지고 있다. 즉 공무원도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기본권의 하나인 참정권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참정권의 제한은 민주주의의 원칙에 반하며, 최근에 공무원의 자율적 책임을 강조하는 행정책임이 강조되는 추세에 비추어 볼 때 이들의 정치활동을 엄격히 제한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모순이다.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 정치원리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에서 어느 특정 집단의 정치적 자유만을 제한하는 것은 불공평하다고 볼 수 있다.

다섯째, 공무원의 정치활동의 제한은 참여관료제의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 여기서 참여관료제란 공무원들의 정책형성 참여 기회 및 대내외적 의사표명의 기회를 보장해주는 정부관료 제도를 의미한다.

여섯째, 공무원들에게 무조건적으로 정치적 무관심을 요구할 경우 그들이 정치적 가치, 즉 공익 또는 약자의 보호문제에 무감각하게 될 위험이 있다. 오늘날 공무원들은 환경변화에 민감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진취적 정신을 지니고 있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 공무원들은 정치적 소신을 가지고 변화하는 환경에 대응해 나가야 하는데 지나친 정치적 중립의 강조는 공무원의 이러한 정신을 저해할 수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정치적 중립의 지나친 강조는 정부 관료제의 국민 대표적 기능을 제한한다는 것이다.

일곱째,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을 요구하는 근거는 정치행정이원론에 기초를 둔 것인데, 행정과 정치의 밀접한 관련성을 강조하는 오늘날의 현실에는 부합되지 않는다. 정치와 행정의 밀접한 관계는 특히 정치인과 공무원이 정책결정과정을 공유하고 있는 현실에서 잘 파악될 수 있다.

여덟째, 선진민주사회로의 상황변화로 말미암아 공무원의 정치활동 규제가 불필요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엽관주의가 성행했던 과거와 달리 오늘날은 실적제가 성립되어 엽관제의 폐해가 적기 때문에 과도한 정치활동의 규제는 불필요하다는 것이다.

아홉째, 민주정치의 원칙은 정치활동에 대한 공정하고 광범위한 참여를 보장하는 것인데, 국민의 상당수를 접하는 공무원집단의 정치적 활동을 제한하는 것은 민주정치의 원칙에 반하는 것이다.

공무원이 정치적 중립을 지키느냐, 정치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느냐 하는 문제는 정확한 기준을 잡기가 힘들기 때문에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역사적으로 공무원들의 정치적 활동으로 인한 폐단이 많았기 때문에 공무원에 대한 정치적 중립 의무를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점점 국민의 기본권으로서 공무원의 정치적 의사 표현에 대한 의식이 변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렇게 정치적 중립에 대한 억압적인 규제와 정치적 의사 표현 자유에 대한 시민들의 의식에서 생기는 괴리를 좁히기 위해서는 양 측의 개념을 잘 조화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법적 규제를 완화가 요구된다. 우리나라의 현행법에는 공무원이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고 일체의 정치활동을 하는 것을 금하고 있지만 현실 상황을 고려해 보았을 때 그다지 적합한 제도는 아니다. 정치적 중립을 지키되 업무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의사 표현을 할 수 있게 하거나, 공무원신분인 공적지위가 아닌 사적지위에서 정치적 표현을 하되 국민에게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범위 내에서 표현을 할 수 있게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즉 공인으로서의 정치적 중립을 유지해 나가되 한사람의 국민으로서의 기본권은 보호해주는 현실적 상황을 반영한 입법이 요구된다. 마지막으로, 공직사회의 의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공무원들의 의식이 현실적으로 제도에 따라 그에 맞게 정치적 표현을 적당히 할 수 있도록 성숙해져야 할 것이다. 무작정 정치적 의사를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중립의 필요성을 인식하면서, 국민으로서 개인의 의사를 표현해야 하는 것이다.

표현의 자유는 정신적 자유와 정치적 자유의 핵심이다. 즉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유지하고 행복을 추구하는데 있어서 가장 핵심적이고 중요한 기본권인 동시에, 현대 민주주의에서 국민주권을 실현하는 필수불가결한 궁극적 기본권이다. 특히 다원화 되어 있는 현대 사회에서 실재하는 민주주의와 이상적인 민주주의 사이의 간격을 좁힐 수 있는 방법으로 '공론'영역의 확대가 있고 그 공론영역 형성의 기본원리가 바로 표현의 자유이다.

우선 표현의 자유의 법적 개념정의 중 공무원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와 관련하여 그 범주 및 방법 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단 공무원도 한사람의 국민으로서 그 표현의 자유를 언론 및 출판의 자유에 한정하지 않고, 예술 등 창작적 활동에 대해서도 폭넓게 인정되어야 하며, 언론․출판의 자유는 의사표현의 자유 외에 보도의 자유, 알 권리, 액세스권까지도 그 내용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현행헌법의 법문으로 볼 때 언론․출판의 자유이외에 비언어적이거나 비문자적 매체나 행동 등에 의한 상징적 표현과 집단적 표현인 집회․결사의 자유도 포함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정치적 고려를 하지 않는 다면 공무원의 표현의 자유를 일반인과 같이 최대한 광범위하게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정치적 중립의 한계와 관련하여서는 선을 그 을 필요가 있다. 따라서 공인인 그 직위를 이용한 정치적 의사표시를 하는 것은 금지할 수 있지만, 국민 한 사람이라는 개인으로서 하는 정치적 의사표시까지 금지하는 것은 과도하게 정치적 자유를 부정하는 것이다. 개인의 사적지위와 공적인 지위는 구분하여 공적인 공간에서의 정치적 의사표현은 제한될 수 있지만, 국민 개인으로서 정치적 견해를 표현하는 등의 정치활동은 보장되어야 한다. 또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방법의 한 유형으로서 집회․결사의 자유와 근로3권을 통한 정치적 의사표현은 행정의 안정성 확보를 통한 국민의 권익보호 및 국가의 안전보장 차원에서 다른 유형의 표현의 자유보다 그 제한이 엄격하더라도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할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공무원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수위를 어느 기준에 맞추어야 하는가이다. 우리나라 공무원의 정치적 활동에 대한 제약은 다른 나라와 비교해 엄격한 바, 이는 과거 정권에서 공무원들의 정치적 활동으로 인한 폐단, 즉 선거에 대한 부당한 개입과 이로 인한 행정의 중립성 침해 및 공익의 훼손 등의 요인에 기인한다. 결국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제한 정도는 국민과 공무원의 의식 수준 및 민주정치 실현의 성숙도에 의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국민과 공무원 의식수준 및 정치환경의 성숙도를 검토하고 난 후에 정치적 중립을 완화하기 위한 요건을 고려해야 한다. 즉,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을 완화시키기 위한 제반여건에 대한 논의가 요구된다.

비록 우리나라 민주주의 역사가 짧기는 하나 과거 정치적 중립을 이유로 공무원의 표현의 자유를 엄격히 제한하던 시절에 비하여 국민과 공무원의 의식 수준 및 정치환경은 높은 성숙도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공무원이 정치적 중립을 지키되 업무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의사 표현을 할 수 있게 하여야 할 것이다. 즉, 공무원의 신분보장을 통한 행정의 안정성과 전문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인정해 주어야 할 것이다. 정치적 중립을 유지해 나가되 현실적 상황을 반영하여 법 규정을 완화해야 한다.

5.16 군사 쿠데타 이후 50년 가까이 공무원은 정치적 자유를 억압당해 왔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정치적 동물(Homo politicus)이다. 이런 면에서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과도하게 요구하는 것은 인간 본성에 대한 부정이며, 기본권에 대한 본질적 침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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