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태 박사 / 뉴스티앤티

시대에 따라 무엇이 평등인가가 달라지기는 했으나 평등한 것이 유사이래 인간이 추구한 정의로운 것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우리 헌법의 이념 역시 예외일 수는 없다. 따라서 인류의 역사는 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과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 하나는 과거에도 평등하지 않았지만 현재도 평등하지 않고 장담컨대 미래에도 평등하지 않을 것이다. 인류가 생존 하는 한 지구가 멸망할 때까지 결코 평등한 사회는 오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를 방치할 것인가? 그렇지 않다. 근대 입헌주의에서 현대에 이르기 까지 불평등한 현상을 방치하는 것은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하는 명백한 위헌이며, 동시에 국가체제의 붕괴를 가져올 수 있는 심각한 위험요소로 작용할 수 있음을 우리는 역사적 과정을 통해 체득한 바 있다. 즉 자유민주주의가 사회주의나 사회민주주의로, 자본주의가 수정자본주의로의 전환으로 불평등한 요소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가 개입하는 역사적 경험을 해왔다.

평등에 대한 법적인 이론은 인종차별을 근간으로 발전해 왔다. 그러나 인종차별의 역사가 표면화 된 것은 사실상 미국의 노예제도를 근간으로 하나 여성에 대한 차별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지속되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이유는 여성에 대한 차별은 인종차별과 달리 명백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성에 대한 차별이 사회에 미치는 악영향은 인종차별과 같은 강한 차별이 가져오는 명백한 효과와는 달리 그 희생자조차도 그 결과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으며, 종교적 교리나 도덕률에 의해 그러한 차별을 당연한 관습정도로 여겨왔다. 따라서 인종차별과 같은 명백한 차별보다 성차별이 사회에 미치는 악영향이 오래 지속되어 쉽게 근절되기 힘들 수 있다. 또한 인종, 성별, 종교 등 특정한 기준을 근거로 하는 직접적 차별과 달리 표면상으로는 성 중립적이나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 불리한 결과를 가져오는 조치나 규정, 관행에 의해 야기되는 간접차별이 사회에 만연해 있다. 이러한 성차별에 대한 인식부족과 간접성은 인간으로 하여금 불평등한 상황에 대하여 무지하거나 방관하게 만든다. 이런 의미에서 인종차별과 같이 명확하고 직접적이며 신랄한 차별보다 여성에 대한 차별이 더 위험할 수 있다. 그래서 성평등에 관한 문제는 더 신중하게 고민하고 더 체계적인 방법으로 접근해야 한다.

평등은 개인의 권리이고 국가는 모든 국민이 평등하게 살게 할 의무가 있다. 여기에서의 평등은 형식적 평등이 아닌 실질적 평등이며, 절대적 평등이 아닌 상대적 평등이다. 형식적・절대적 평등은 말 그대로 모든 사람에 대해서 그 사람의 능력이나 재능 재력, 이런 모든 사정을 참작하지 않고 형식적으로 동등하게 대우하는 것이다. 반면 실질적․상대적 평등이라 함은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이것이 대표적인 실질적 평등에 대한 정의 이다.

예를 들면 소득세의 경우 한 달에 100만원 받는 사람과 1000만원 받는 사람이 있다면, 100만원 받는 사람에 대해서 10%를 부과하고 1000만원 받는 사람에 대해서도 10%를 부과한다면 이것은 형식적 평등이나, 100만원 받는 사람에 대해서는 10%부과하고 1000만원 받는 사람에 대해서는 40%를 부과한다면 이것은 실질적 평등에 적합한 과세라고 할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경우 소득세율은 면세부터 40%까지 누진세로 부과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실질적․상대적 평등이념에 입각해서 대학입학에 있어서 소수인종을 우대하고 있다. 소수인종의 경우 백인들에 비해서 경제력도 떨어지고 따라서 학업에 전념할 수 없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경우에 소수인종과 백인을 실질적․상대적으로 평등하게 만들어주기 위해서 소수인종을 대학입시의 경우에 우대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대학입시에 있어서 농어촌특례입학이라는 제도가 있는데 이것이 실질적 평등을 위한 것이다. 이러한 제도를 적극적 평등실현조치(affirmative action)라 한다.

적극적 평등실현조치라 함은 역사적으로 사회로부터 차별을 받아온 일정 집단에 대하여 그러한 차별로 인한 불이익을 보상해주기 위하여 그 집단의 구성원이라는 이유로 취업이나 학교입학, 기타 사회적 이익을 직접 또는 간접으로 부여하는 정부의 정책을 말한다. 적극적 평등실현조치는 기회의 평등보다는 결과의 평등·실질적 평등을 추구하는 정책이고, 개인보다는 집단에 초점을 맞춘 개념이며, 항구적 정책이 아니라 구제(救濟)의 목적을 달성하게 되면 종료하게 되는 잠정적 조치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적극적 평등실현조치를 긍정하는 견해와 부정하는 견해로 갈린다. 미국연방대법원에서도 1978년 ‘Bakke 판결’에서 대학입학에 있어서 일정비율 이상 소수인종을 선발하도록 강제하는 쿼터제는 금지하였으며, 인종이 가산점 인정사유가 될 수 있다고 하여 적극적 평등실현조치를 인정하되 그 수단을 제한하는 중도적인 판결을 내린 바 있고, 2003년 부시 대통령이 인종별 가산점 부여와 같은 적극적 평등실현조치를 폐지하겠다는 내용의 연설을 함으로써 다시 한번 역차별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그러나 차별집단에 우선적 처우를 통해서 과거차별의 기회를 극복하고 진정한 기회의 평등을 달성할 수 있고, 소수집단이 겪었던 차별은 개인적인 사유가 있어서 차별을 받은 것이 아니라 소수라는 ‘집단’에 속했기 때문에 차별을 받은 것이므로 과거에 차별 받았던 개인을 일일이 골라내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점, 소수집단이 과거에 받아왔던 차별에 의하여 무고한 다수집단 모두가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이익을 받았다고 볼 수 있고, 다수집단이 당하는 희생도 과거에 소수집단이 받았던 희생에 비교하면 미미한 수준에 불과하다는 점, 그리고 평등실현조치가 없을 경우 사회의 다양성과 평등을 달성하기가 현실적으로 곤란하다는 점을 생각해 볼 때, 적극적 평등실현조치의 필요성은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헌법에는 적극적 평등실현조치를 통해 성평등이라는 목표을 실현하기 위한 다음과 같은 규정들이 있다.

제11조 ①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제32조 ④여자의 근로는 특별한 보호를 받으며, 고용·임금 및 근로조건에 있어서 부당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제34조 ③국가는 여자의 복지와 권익의 향상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제36조 ①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
          ②국가는 모성의 보호를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성평등한 사회를 지향하는 데 있어서 법은 완벽한 도구가 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이 사회를 지탱해 나가고 있는 수많은 사회규범 및 제도의 일종이 법이다. 그러나 여타의 사회규범과 제도들이 그러하듯 법은 엉성하기 짝이 없다. 법 자체가 태생적으로 그러하다. 실정법은 성문의 법과 불문의 법으로 나뉘는 바, 성문의 법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것들은 관습법이나 판례, 또는 조리로 해결하게 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법률의 하나인 민법 제1조에는 ‘민사에 관하여 법률에 규정이 없으면 관습법에 의하고 관습법이 없으면 조리에 의한다.’라고 하여 법 스스로 자신의 불완전성을 처음부터 털어 놓고 있다. 민법만 그런 것이 아니고 모든 법률이 그러하며, 특히 성평등 관련법들이 더욱 그러하다.

성범죄와 관련된 것들은 형사법에 의해 처벌이 가능하기 때문에 그 법의 실효성을 어느 정도 담보할 수 있으나, 그 이외의 여타 성평등 관련 법률들은 그를 강제할 수 있는 방법들이 미비하여 통제 불가한 것이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 개인 기업에 여성인력채용율을 50%라고 강제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벌금이나 과태료를 물릴 수 는 없는 일이다. 이는 사적 영역에서 일어나는 문제에 대하여 국가의 공권력 관여가 제한되는 이치로써, 특히 가정과 같은 극도로 사적인 영역에서는 법으로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이 대부분이다. 즉, 사적인 영역은 법밖으로 내몰린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법은 크게 두 가지 영역으로 나뉜다. 사적 영역을 규율하는 사법과 공적 영역을 규율하는 공법으로 나뉘는 바, 사적 영역에서 일어나는 문제에 대하여는 국가의 공권력 개입이 어려운 실정이다. 따라서 특히 사적 영역에서 일어나는 평등에 문제에 대하여는 국법의 적용과 보호를 받기 힘든 부분이 많다. 특히 가정이라는 가장 기초적인 사회단위가 그러하다. 우리의 가정생활을 둘러보면 부부간에 부모지간에 형제지간에 얼마나 불평등한 요소가 많은가? 그렇다고 거기에 법의 잣대를 들이댈 수는 없는 노릇이다. 특히 가정에서 일어나는 불평등한 요소들은 법이외의 사회규범인 관습과 도덕에 의해 지배를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종교적 영역도 마찬가지인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는 다른 문명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정교를 분리하는 이유도 평등권과 같은 기본권을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많은 여성들은 평생동안 일상적 삶을 가정이라 불리우는 ‘사적 영역’ 안에서 살아간다. 여성들이 주로 하는 가사노동은 무보수노동으로서 가족에 대한 사랑이라는 사적인 의미를 부여받고, 여성의 자녀출산 역시 가족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사적 결정인 것이다. 또한 성과 사랑, 친밀감의 관계는 계산과 이익에 의해 환원될 수 없는 비시장적이고 비정치적인 영역으로 간주되어 왔다. 하지만, 이러한 ‘사적’ 영역은 사랑과 숭고함 뿐 아니라 불평등과 억압이 존재하는 공간일 수도 있다.

법으로도 완성도 높은 성평등을 실현하기란 많은 한계에 봉착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일반인이 생각하는 것처럼 법은 완벽하지 않으며 입법을 하는데 있어서도 기득권을 가진 이들의 힘이 작용하기 나름이다. 법의 영역 안에서도 그러한데 법밖의 영역에 대해서는 말 할 것도 없다. 어쩌면 성평등이라는 것은 법안에서도 법 밖에서도 이룰수 없는 이상에 불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를 방치해서는 아니 되며 이를 방치하면 심각한 사회해체 내지 붕괴를 가지고 올수도 있다. 그러면 어떤 대안이 있을까? 한 세 가지 정도로 요약해 보자.

첫째, 성평등을 추구하는 사람들 스스로 국회의 입법활동을 모니터하고 바람직한 입법을 통해 평등사회를 이룩하기 위한 감시의 끈을 놓지 말아야한다. 여성사회단체와 여성 의원들을 중심으로 이러한 활동이 제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를 일반화 해야한다.

둘째, 정치적 참여를 통해 성평등한 사회를 만들 수 도 있을 것이다. 이는 현실정치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현상으로 공직선거에 출마한 후보자들은 여성의 표를 얻기 위해서 수많은 성평등 공약을 내놓는다. 근래에 들어와 선거공약을 통한 법과 제도의 개혁으로 정치·경제·사회·문화 여러 영역에서 성평등을 이루어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교육을 통한 의식의 전환이다. 국민들의 성평등한 건전한 의식만이 평등사회를 실현할 밑거름이다. 교육을 통하여 국민의 의식이 평등하게 전환된다면 이는 법에 담고 있는 평등도 담보할뿐더러 법밖의 사적 영역의 평등도 보장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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