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태 박사 / 뉴스티앤티

예비군 훈련장에서 정관수술을 무료로 해주던 시절이 있었다. 전두환 정권 시절 시행된 이 정책은 박정희 정권이 주력했던 산아제한을 좀 더 강력하게 시행하기 위한 49개 시책의 일환이었다. 하지만 1984년 합계출산율이 1.76으로, 1986년에는 1.58까지 떨어졌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1980년대 필요한 건 ‘무상 정관수술’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정부는 지금 산아제한 정책을 폐기하면 기껏 낮춘 출산율이 다시 반등할 것이라는 판단 때문에 1996년까지도 정책을 계속했다.

정부는 1996년에서야 인구 억제정책을 폐지하고 새로운 인구정책의 기조로 인구자질 향상과 복지에 중점을 두었다. 이때까지도 출산율 회복을 위한 국가 차원의 검토는 극히 미약하였다. 또한, 1990년대 중반부터 출산율이 급감하였으나, 외환위기의 영향으로만 인식하여 저출산이 심각한 사회현상으로 이슈화하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2002년 국민연금발전위원회가 국민연금 개혁방향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저출산 때문에 국민연금 재정이 고갈할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하였으며, 더욱이 2002년도 합계출산율 1.17명으로 발표하면서 저출산 문제를 사회적으로 공론화하였다. 출산 정책 전환을 위한 적절한 시점을 놓친 대가는 컸다.

얼마전 중국이 35년간 유지해온 산아제한 정책인 한 자녀 정책을 폐기하고 모든 부부에게 자녀 2명을 낳는 것을 허용하기로 했다. 이는 중국만의 문제는 아니며, 유럽과 미국을 포함한 범세계적인 문제이고 우리나라 역시 저출산 문제에 있어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저출산 문제는 오늘날 전 세계가 당면하고 있는 가장 큰 사회 문제 중 하나이다. 저출산은 출생률이 저하되는 현상을 말하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현재의 인구 유지가 불가능한 2.1명 미만을 이야기하고, 보통은 이민을 통한 부분적인 벌충으로도 인구 유지가 불가능한 1.5명 미만을 이야기한다. 대한민국은 대만, 일본, 이탈리아와 더불어 대표적인 저출산 국가이다. 고등교육을 받은 여성이 사회에 쏟아지면서 여성취업률이 급증하고 여권신장과 보육부담이 맞물리면서 합계출산율은 2005년 1.08까지 낮아졌다. 1960년만 해도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전체 인구 중에서 2.9%뿐이었지만 2000년 7.1%가 되면서 고령화 사회에 진입했다. 2017년에는 고령 사회(노인 인구 비중 14%), 2026년에는 초고령사회(노인 인구 비중 20%)에 진입한다. 저출산은 단순히 출산율이 낮아 인구가 감소하는 문제에 국한하지 않고, 다음과 같은 다양한 사회문제들로부터 유발되는 복잡하고 심각한 결과이다.

· 육아 양육비 부담과 과도한 사교육 비용

· 여권신장과 더불어 여성의 사회진출 증가와 회사를 다니는 여성의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의 부족

· 학력과 경제력으로 인한 결혼 포기

· 결혼과 육아를 필수가 아닌 선택으로 보는 시각의 확산

· 독신을 선호하는 사람 수 증가

· 만혼(晩婚)으로 인해 여성이 평생 낳는 아기 수의 감소

· 자녀 양육에 대한 가치관 변화

· 이전세대와는 차별된 삼포세대(연애·결혼·출산 포기) 등장

1955년부터 1963년까지 대한민국의 여성 1인당 합계출산율(여자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은 6.1명이었다. 이승만 및 윤보선 정부에서는 출산을 장려했지만 5·16 군사 정변 이후 박정희에 의해 1960년대 초반부터 지속적인 가족계획이 실시되면서 1964년부터 1967년까지는 5.2명, 1968년부터 1971년까지는 4.7명이었으나 1970년대 초반부터 가족계획을 매우 강화시켜서 1984년에는 2명 미만인 1.74명 수준으로 떨어졌다. 다음해인 1985년 1.66명 수준으로 약간 떨어졌고 그 이후에도 계속된 정책으로 마침내 1987년 출산율이 1.53명 수준까지 떨어졌다. 이후 1996년 8월 김영삼 정부가 출산정책을 산아제한정책에서 산아자율정책으로 전환했으나 출산율은 빠른 속도로 하락하였다. 대한민국의 IMF 구제금융 요청에 따른 여파로 출산율은 계속 떨어졌다. 김대중 정부에서 2000년에 즈문둥이 출산을 장려하여 일시적으로 출생아 수가 증가했지만 2001년에는 1.30명의 초저출산사회로 접어들었다. 이에 따라 기존의 산아자율정책에서 더욱 앞서나가 출산장려정책을 펴기 시작했지만 2005년에는 역대 최저치인 1.08명으로 떨어졌다. 이후 황금돼지해 홍보 등 정부의 갖은 노력에 힘입어 2007년 1.26명으로 급증했지만 곧 경제 위기 등으로 인해 2009년 1.15명으로 감소했다. 2010년부터는 다시 증가하기 시작하여 2012년 1.3명으로 초저출산 국가에서 탈출하려는 기미를 보였으나 그 후 이어진 불경기 등의 여파로 출산율은 감소하여 2013년 1.18명, 2014년 1.21명에 이르렀다. 이러한 출산율 변화는 아래 인용문에서 잘 드러난다.

1950년대: 3남 2녀로 5명은 낳아야죠.
1960년대: 3·3·35운동 - 3자녀를 3년 터울로 35세 이전에 단산하자.
1970년대: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1980년대: 잘 기른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
1990년대: 아들 바람 부모 세대 짝꿍 없는 우리 세대
2000년대: 아빠, 혼자는 싫어요. 엄마, 저도 동생을 갖고 싶어요.
2010년대: 하나는 외롭습니다. 자녀에게 가장 좋은 선물은 동생입니다.

— 보건복지가족부, 인구보건복지협회발췌

통계청이 발표한 '2014년 출생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출생아 수는 43만5400명으로 정부가 1970년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래 두 번째로 적었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1.205명으로 여전히 '초저출산' 기준선(1.30명) 밑에 머물러 있다. 또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도 최하위 수준이다. 저출산은 세계적 현상이긴 하지만 영국 옥스퍼드대학 인구문제연구소가 '저출산 때문에 지구촌에서 사라질 첫 번째 나라'로 대한민국을 꼽을 만큼 우리나라가 특히 심하다는 것이 다시 확인됐다. 저출산의 원인이 복합적인 만큼 획기적인 해결책을 마련하긴 쉽지 않다. 저출산은 고르디우스의 매듭처럼 단칼에 해결할 수 있는 해법을 찾기 어렵고, 설령 찾더라도 짧은 시간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사회의 전반적인 활력을 떨어뜨리고 성장 잠재력을 저하시키는 저출산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저출산 현상에 대한 정부의 공식적인 대응은 2003년부터 본격화하였다. 2004년에 대통령자문 고령화 및 미래사회위원회를 설치하였으며, 2005년에 법적 근거로 『저출산·고령사회 기본법』을 제정하였다(9월 1일 시행). 동년에 고령화 및 미래사회위원회를 대통령을 위원장으로 한 저출산·고령사회 위원회로 격상하였으며, 이를 뒷받침할 실무조직으로 저출산·고령사회정책본부를 범정부적 조직체 형태로 설치하였다. 이에 앞서 국무총리실에 ‘저출산대책 추진기획단’을 설치하여 12개 관계부처와 민간전문가를 참여시켜 실천과제와 재원조달방안을 마련하였다.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에서는 저출산·고령사회에 대응하기 위한 청사진을 작성하고, 이를 토대로 5년마다 중장기계획을 수립·추진토록 하고 있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서는 2006년 6월 5일에 ‘제1차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2006-2010년)’을 발표하였다. 동 계획에 따르면, 정부는 2020년까지 저출산·고령사회에 대응하여 전반적 사회경제구조 개혁을 추진하여 ‘지속발전가능사회’를 실현하는 목표를 설정하고 있다. 구체적인 정책성과를 가시화하기 위해 5년마다 단계적·전략적 목표를 설정하고, 계획을 수립·추진하고 있다.

저출산의 위기는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흔히 일반적으로 일컫는 저출산으로 인한 노동력 감소, 인구 구조의 불균형이고, 두 번째는 막대한 정부의 예산 투입에도 불구하고 미미한 출산율 상승이다. 세 번째는 저출산의 추세에 적응하지 못한 체 막연한 저출산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에 있다. 10년 가까운 저출산 극복정책에도 그 효과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는 현실은 정책의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와야 할 때라는 경고이다. 상당히 복잡하게 얽혀있는 한국의 저출산 원인을 사회구조적인 측면에서 전폭적으로 개혁하지 못한다면 이제 정책의 방향을 바꾸어 저출산 적응을 위한 대안 마련을 모색해야 한다.

정부의 제1·2차 저출산 대책은 정책의 초점을 출산 장려 캠페인, 보육 지원 등 미시적 접근에 두어 저출산의 사회구조적 원인에 대한 근본적 해결에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었다. 특히 저출산 대책비의 70% 이상이 보육지원에 사용되는 문제점에 대해 최근 수립된 제3차 저출산 대책은 보육뿐만 아니라 만혼추세 완화에 대해서도 신경을 쓰고 있다. 이는 유배우 비율이 계속 감소하는 추세에서 출산율을 높이는 데 매우 중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만혼추세 완화라는 정책의 목표를 이루는 것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만혼 및 비혼 추세는 가치관의 변화뿐만 아니라 청년실업, 주택마련의 어려움, 비정규직 확대, 불확실한 경제 상황등과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족의 육아부담 경감, 공공보육서비스 확충, 육아휴직 활성화 등을 통해 출산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는 정책적 배려는 지속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또한 출산율 상승을 위한 노력과 더불어 저출산 시대에 야기 될 수 있는 노동력 부족 문제, 1인 가구주들의 안녕과 관련되는 복지·심리 등의 문제들을 위한 정책의 전환점이 필요하다. 따라서 여성과 노인의 노동력 확보, 외국으로부터 노동력의 유입, 다문화 가족을 통한 경쟁력 확보, 1가구주를 위한 협동조합 형태의 주거정책 등을 대안으로 제시할 수 있겠다.

출산율 향상을 위한 노력은 정부뿐만 아니라 가정에도 이루어 져야한다. 페미니즘을 통한 변화가 그것인데 과거와 달리 지금 여성들은 일도 가사도 잘해야 한다. 이렇게 부담을 지워서는 출산율이 높아질 수 없다. 양성 평등한 환경 조성과 문화 확산으로 여성에게 일·가정 양립이 유효하듯이 남성에게도 유효해야 한다. 스웨덴은 양성평등이 높아지면서 출산율이 반전됐다. 전통적인 역할을 파괴하여 아내가 일을 하고, 남편이 아이를 돌볼 수도 있는 가정 풍토를 조성해야 여성들이 출산의 부담을 덜게 되어 출산율 상승에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는 정부와 각각의 개인 모두가 노력해야 저출산의 디스토피아(dystopia)에서 탈출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작권자 © 뉴스티앤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