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6, 11 (화) 맑음오늘 따라 표정이 밝다.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오후 4시 반이면 난 내 아내 오성자를 데리러 인동에 있는 국제주간보호센터에 간다. 이곳 주간보호센터는 요양보호사며 두 분 원장께서 친절했고 밴드를 활용하기 때문에 이곳에서 행해지고 있는 생활 모습을 밴드를 통하여 알 수 있어 좋았다.그동안 아내를 데리러 오던 사회복지사께서 다른 곳으로 옮겨 갔기에 그곳으로 따라갈까 하였다. 그분은 신앙인으로서 함께 가는동안 찬송가도 부르며 기분을 맞춰주기에 내 아내는 그 복지사분을 무척 따랐고 나도 그분의 친절을 믿고
쳐들어간다, 북으로무모하고 위험천만한 일이었으나 함께해야 할 사람들이었기에 그들의 심중을 파고들어 신뢰를 쌓아야 했다. 그들을 2칸 조그만 집으로 초대했다. 두 남매와 임신 8개월째로 접어든, 배가 불룩한 나의 아내를 소개했다. 진심은 통했다. 몇 순배의 잔이 돌고, 상 위의 음식을 몇 번이나 다시 채우는 사이 분위기가 한껏 고조되었다. 아내가 남매와 함께 빈 주전자를 들고 문을 나설 무렵, 나는 그들에게 핵폭탄을 던졌다.“우리는 쳐들어간다, 북으로!”나는 핵폭탄을 던져 놓고 후폭풍을 기다리며 그들을 주시했다. 기다리는 그 순간,
오직 사랑이신 한 분 모심이 어디 이만하랴눈 뜨면 맨 먼저 찾는 귀하신 그대보이지 않음 공황장애 따윈 저리 가라다 뭔 놈의 때 가림 오로지 그대만 있으면 만사형통일찍이 이리 융숭한 대접 받던 존재 몇몇이던고기막힌 이 시류 흠모도 나름이지 미치고 미치지 않고서야 그저 신들이 곡할 노릇가릴 게 뭐람 무시로 까발리는 무엄한 그댈손 모아 떠받드는 맹신도 차고 넘치나니도대체 그대를 무어라 칭해야 할꼬 잡신의 위격이 무색한 기이한 그대삽시간에 수도 없이 노예 만들고 미치게 하는그대 또 하나의 광신으로 자리한 존재 아니겠는가?- 김선호 시인의
"강력한 응징은 적의 도발을 방지한다." -이진삼- 보복을 결심하다1967년 3월, 김일성은 제4기 15차 전원회의를 열었다. 그 자리에서 5·16 이후 남북 간 경제력 차이가 벌어지자 ‘한국 정부를 전복하는 데 역량을 집중, 무장공비를 침투시켜 민심을 교란하라’는 지령을 전군에 하달하였다. 이후 북한은 무장공비를 침투시켜 주요시설을 파괴하고 민심을 교란시키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북한은 1966년 봄부터 강원과 충청을 비롯해 전국 곳곳에 무장공비들을 57회 침투시켰고, 1967년에는 118회로 2년간 175회로 극에 달했다. 북한
쌍권총 이 대위베트남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돌아와 내가 다시 맡은 일은 방첩부대 특공대장 임무였다. 베트남 갈 때는 진급의 우선권과 보직의 우선권을 약속했었지만, 정작 내가 돌아왔을 때는 다시 특공대장 임무를 맡도록 사령부에서 내인가를 받아 놨다. 항시 몸에 권총을 차고 다녀야 했고 차에 소총과 수류탄을 싣고 다닐 만큼 특공대장 업무는 위험하고 고생스럽다. 예고도 없이 수시로 작전에 투입돼야 했으니 말이다. 나는 생명을 담보해야만 임무수행을 할 수 있는 특공대장을 다시 맡아야 하는 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떠올리고 싶지 않은 동
난민 수용소주월 한국군에 월남은 쌀을 지원하도록 각서(覺書)에 포함되어 있었다. 사시사철 월남은 이모작으로 쌀이 풍부하였으며 보리밥 신세인 한국 장병들은 마음껏 먹었다.주월 한국군 군수사령부로부터 1966년 7월, 10개월간 먹고 남은 쌀을 기증하기 위하여 월남 피난민들을 수용하는 학교 운동장에서 개최되는 행사에 참석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나는 기동대장으로 대원들을 총동원하여 월남 경찰과 합동으로 테러 위협으로부터 방호하기 위하여 행사 시작 2시간 전에 행사장으로 향하는 모든 도로의 입구에서 비노출로 경계를 하고 있었다. 행사장에는
누명내가 베트남전에 참가하기 위해 강원도 홍천에서 훈련을 받고 있던 날 새벽 1965년 9월 8일 0시 40분, 동아방송 조동화 제작과장(현 무용전문지 《춤》 발행인)이 납치돼 매를 맞은 사건이 발생했다. 괴한 4명이 “시경에서 왔다.”며 조 과장을 장위동 자택에서 납치해서 뭇매를 때려 온몸에 심한 상처를 입혔다. 그러자 각종 언론매체는 바로 직전인 1965년 9월 7일 오후, 동아일보 변영권 편집국장 직무 대리의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집 대문이 폭발물에 의해 안벽이 허물어졌던 사건까지 싸잡아 군부를 의심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삶과 죽음베트남전과 관련해 두 사람의 죽음에 대해 언급할 필요가 있다. 그중 한 사람은 강재구 대위의 죽음이다. 그는 육사 16기로 나의 1년 후배다. 맹호사단 제1연대 10중대장으로 베트남전 파병을 자원하여 1965년 9월 초부터 강원도 홍천에서 4주간의 교육 훈련을 받던 중이었다.1965년 10월 4일, 중대에서 수류탄 투척 훈련을 하던 중 한 병사가 실수로 중대원들이 있는 한가운데로 수류탄을 떨어뜨리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 순간, 이를 발견한 강재구 대위가 재빠르게 몸을 날려 수류탄을 덮침으로써 부하들의 목숨을 구하고 자신은
신원 조사월남에서의 보직은 맹호사단 기동대장 겸 100군수사령부 보안부대장으로 소령 직책이었다. 국내에서의 특공대장 경력을 고려하여 한국과 우방국의 VIP에 대한 경호 임무인 기동대장 직책과 월맹군과 베트콩 등, 적의 정보를 수집하여 맹호사단에 제공하는 위험하고 어려운 직책이었다. 짧은 기간에 임무를 분석하고 대원들의 특기를 고려하여 3개 팀을 구성하였으며, 3개월 후부터는 맹호부대 정보참모부는 전투 정보를 수집하고, 보안부대는 민관군 특수 정보를 수집하기로 협조하였다.맹호사단은 홍천에서, 100군수사령부는 용평에서 각각 파월을 준
상대방이 얼굴에 침을 뱉으면 저절로 마를 때까지 기다린다는 말이다. 처세(處世)를 잘하기 위해서는 때로는 참기 힘든 수모도 견디어야 하며, 인내하며 자신을 살펴 깨우치는 처세가 필요하다는 ‘타면자건’(唾面自乾)은 시민대학의 고사성어(지도교수: 장상현)에서 배운 내용이다.당나라 때 누사덕과 그의 동생과의 대화에서 나오는 이 말은 〈신당서〉 (누사덕전(新唐書 婁師德傳) 십팔사략(十八史略)에 사건의 유래가 들어있다. 살펴보자.『당(唐)나라 측천무후(則天武后)는 중국 역사상 유일한 여성 황제(皇帝)로 약 15년 동안 천하를 지배하였다. 그
베트남 전쟁베트남 전쟁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중학교 때 겪었던 6·25전쟁과 무관하지 않다. 열강의 침략으로 식민 지배를 받았던 것,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타의에 의한 남북 분단, 그리고 동족 간의 전쟁을 치른 비극이 판에 박은 듯 우리의 처지와 닮았다.베트남 전쟁은 1955년 11월 1일에 베트남과 라오스, 캄보디아에서 시작됐다. 말하자면 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이나 다름없다. 1955년 11월부터 1975년 4월까지 20년이나 계속된 이 전쟁은 베트남민주공화국(북베트남)과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베트콩)이 합세하여 베트남공화국(
넌,내 소중한 가시여차하면 찌를 기세로가면 쓴 너그래도 난너의 손을 덥석붙잡고 말았다바보처럼가시가 있다는 사실을잊은 채바보여서미런해서아니넌나의소중한꽃이기에-2018년 5월 26일 새벽-- 이경옥 수필가의 -
손바닥 하나손가락 다섯 개발바닥 하나발가락 다섯 개하늘에서 일하는 손땅에서 일하는 발손 이 발에감사의 표시로 씻겨주고 만져주고발이 가는 길을손이 흔들고 앞장선다발이 가지 않으면손은 할 일이 없다높은 곳도 손으로 잡고발로 딛고 올라서고산으로 바다로들로 산으로너와 내가 멀리 있어도우리는 가장 가까운 친구사랑하는 발로 가서손으로 사랑도 한다엄마는 아이가 세상에 나오면손가락 발가락부터 세어본다손아발아 너희가 있어내가 있었구나그동안 우리 부부도너희처럼 살았구나고맙구나손아 발아그동안 백 년을 살아줘서 고마웠다- 강정부 시인의 -
헐렁한 노을, 뜯어진 실밥갓 태어난 검은 염소처럼비뚤거리며 꿰맨 바느질이었다 아버지의 부음 앞에두꺼운 허리춤을쉬 들어가지 못한 바늘은그만, 부러지고 말았다 아름드리 동백나무가 팔려 나갔다 손가락 끝에 잡힌 물집이 터지고한 땀 한 땀서툴게 박은 올이조금씩 풀어지고 있었다 검은 염소의 뿔이 자라는 동안 올 풀린 실밥 사이로동백꽃 바람이 들고터진 물집에는붉은 문장이 고이고 있었다 뒤란의 동백눈 위에 툭 툭 떨어져있다꽃 한 송이 주워가만,대궁에 입술을 가져가 본다 - 백혜옥 시인의 -
현 정부는 촛불에 의해 탄생했다. 촛불은 따뜻하고 순한 빛을 발한다.그런데 문제인 정부는 섬뜩한 적폐정산의 슬로건을 내걸고 2년 동안 지속 칼날을 휘둘러 왔다. 국민은 이제 피곤하다. 과거에 함몰되지 말고 이제는 미래 지향적으로 나아갈 것을 촉구한다. 과거 잘못의 완전한 청산은 인간의 힘으로 불가능하다. 신의 영역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따라서 완전한 과거 청산은 역사에 맡기고 미래의 희망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남아연방공화국 넬슨 만델라는 인종차별로 27년간을 복역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에 대한 보복을 일체 포기하고 미래를 향한 새
매일 욕을 먹어도때로는 뺨을 얻어맞아도하루 종일 지르는 소리에 시달려도 그래도 행복합니다. 내 아내 오성자가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어제는 돌나물과 달래를 사다 식초와 고추장을 섞어 무쳤습니다.맛있게 먹는 아내를 보며 온종일 행복했습니다. 사그라드는 아내를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 그게 그렇게 행복할 수 가 없습니다. 내 아내 오성자가화장실에 가면함께 따라가꼭 안아줍니다. 소리를 지르지 않고편안해 하기 때문입니다. 아내가 얼굴을 마주하며 편안해 하는 모습 그게 하나님께서 주신축복의 행복입니다. 2019년 4월 16일, 김용
보병학교 구대장1963년 5월 4일, 동기생 24명과 함께 광주 상무대 보병학교로 명령을 받았다. 그러자 연대장 윤필용 대령은 “육군본부에 연락해 명령을 취소하겠다.”고 나섰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보병학교로 가겠다고 했다. 연대장은 나를 떠나보내는 것을 몹시 아쉬워했다. 그러면서 “그간 고생했다. 열흘간 휴가나 다녀오지.”라고 하면서 서울 가면 전두환, 노태우, 권익현, 정호용, 김복동 등을 만나볼 것을 권했다.전두환 소령은 최고회의 비서실 민정비서관을 거쳐 중앙정보부 인사과장에 보직되어 있었다. 그를 만나기 위
봄입니다. 봄꽃, 벚꽃 구경으로 축제장에는 발 디딜 틈이 없습니다. 바람결을 따라 이곳저곳으로 흩날리는 봄꽃. 사람들이 뿜어내는 거친 쇳소리가 봄꽃들의 낙하 위치를 어지럽게 만들지만, 그래도 봄은 봄입니다. 그렇게 봄이 우리의 곁으로 훌쩍 다가왔습니다.대산의 봄. 우리 대산의 봄날은 어제쯤 찾아올까요? 따스한 봄을 맞이하기 위해 가벼운 옷을 준비했지만, 가벼운 옷이어서 그런지 마음이 왠지 더 허전합니다. 인구는 반 토막 나고 공장에서 뿜는 회색 연기가 무겁게 마음을 짓누릅니다.당장이라도 나가서 이 답답한 마음을 털어내고 싶지만 나간
헐렁한 노을, 뜯어진 실밥갓 태어난 검은 염소처럼비뚤거리며 꿰맨 바느질이었다아버지의 부음 앞에두꺼운 허리춤을쉬 들어가지 못한 바늘은그만, 부러지고 말았다아름드리 동백나무가 팔려 나갔다손가락 끝에 잡힌 물집이 터지고한 땀 한 땀서툴게 박은 올이조금씩 풀어지고 있었다검은 염소의 뿔이 자라는 동안올 풀린 실밥 사이로동백꽃 바람이 들고터진 물집에는붉은 문장이 고이고 있었다뒤란의 동백눈 위에 툭 툭 떨어져있다꽃 한 송이 주워가만,대궁에 입술을 가져가 본다-백혜옥 시인의 -
리더십중대장을 할 당시는 5·16혁명이 일어난 후 1년이 지난 때로 몹시 어려운 시기였다. 쌀과 보리(압맥)를 4 대 6으로 혼식했다. 그런데 상부에서 공문이 내려왔다. 종전 4 대 6으로 혼식하던 것을 3 대 7로 하고 남는 쌀의 양이 얼마인지를 명시한 후 반납하도록 했다. 쌀 소비량을 줄이기 위함이었다. 그러면서 ‘60만 명의 장병이 보리를 더 먹고 쌀을 절약하자’고 했다. 상부 지시가 내려와 각 부대별로 실행에 들어갔다.며칠 후 점심시간, 대대장이 우리 중대 식당을 방문했다. 대대장은 병사들을 향해 큰소리로 말문을 열었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