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파병 동의안2010년 2월, 여야 간 극한 대립으로 갈등을 빚고 있을 때 나는 주도적으로 앞장서 아프간 파병 동의안에 대해 국방위원회 통과를 이끌어냈다.“이미 68,000명의 병력을 아프간에 파견하고 있는 미국이 2010년 6월까지 신속하게 30,000명을 추가 파병하여 아프간 전쟁을 조기 종결시키고자 하는 만큼, 우리도 제대로 된 병력을 보내어 국제 공조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는 소신을 폈다. 그래야만 향후 발생할지도 모르는 한반도 위기 상황에 우방들의 지원을 이끌어낼 수 있는 명분을 쌓는 것임을 강력히 주장했다.이밖에도
우리는 주변에서 사람 이름을 딴 법안, ‘네이밍 법안’들을 많이 접하게 된다. 이런 ‘네이밍 법안’들은 ‘김영란법’처럼 법안을 발의안 사람의 이름을 붙인 경우도 있지만, ‘윤창호법’처럼 피해자의 이름을 붙이는 경우도 볼 수 있다. 올 3월 25일부터 시행된 일명 ‘민식이법(도로교통법 개정안)’이 한 예다. 이 법은 2019년 9월 충남 아산의 한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한 김민식 군(당시 9세) 사고 이후 발의된 법안으로서 어린이 보호구역 내 사고 예방을 위한 내용을 담고 있다.도로교통공단에서 운영 중인 교통사고분
사람들은 언젠가부터 물욕, 명예욕, 권세욕의 노예가 되다시피 살고 있다. 돈 명예 권세를 얻기 위해 시간 투자를 너무 많이 하고 있다. 사람에 따라 좀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리라. 그 중에서 중요한 것은 물질(돈)이 없으면 생존 불능으로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아귀다툼하는 관계 속에서 나름대로 노동을 하고 있다.괴테의 명언에 < 지갑이 가벼우면 마음이 무겁다.>는 말이 있다. 공감이 가는 명언이다. 돈이 없어, 주머니가 비어 있으면 생존도 품위유지도 할 수가 없어서 마음이 위축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에서 비롯된 자본주의와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에서 비롯된 공산주의의 사상적 대립 속에서 세계는 두 진영으로 갈라진 채 수 세기 동안 냉전체제를 견지해 왔다. 그리고 양 체제를 주도적으로 이끌어온 미국과 소련은 수 세기를 통해서 군비경쟁에 총력적 국력을 쏟아부어 온 바 있다. 그러던 중 소련의 붕괴와 함께 세계는 탈 냉전시대를 맞게 되었다. 그로써 세계는 지금 미국이 주도하는 자본주의 일변도의 경쟁 속으로 빨려들고 말았다. 그래서 세계는 지금 대포전쟁의 시대로부터 달러전쟁의 시대로 탈바꿈한 지 수십 년이 흘렀다. 물
국회 입성2008년 4월, 1993년 2월 체육청소년부장관을 그만둔 지 15년 만에 18대 부여·청양군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주변에서 내게 아무리 국회의원을 하라고 해도 하지 않았다. 꼭 국회의원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적도 없었다. 군 생활 하는 내내 정치권의 유혹이 있었으나 흔들리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국회의원이 되려고 했던 것은 잃어버린 국방 10년과 지역 발전 때문이었다.김대중과 노무현 정권으로 인해 허물어진 안보가 걱정되었다. 공직을 그만 둔 야인으로선 아무리 안보를 떠들어도 공염불이었다. 신문 한 줄 어디에도 언급되지 않았다
이세규 국회의원의 사과장군 출신으로 야당의 국회의원이었던 이세규(육사 7기 특기) 의원은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고문까지 받았다. 박정희 대통령과 정부를 신랄하게 비난했다. 나를 향해서도 방첩부대 특공대장 시절에 있었던 1965년 동아방송 조동화 사건과 연계해 1971년까지 6년간을 국회에서 질의했다. 그러다 나와 무관하다는 것을, 취급했던 검사로부터 확인하고 남자답게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내게 정중히 사과하였다.1991년 5월 28일, 육사 7기 동기생 회원들과 함께 계룡대 육군본부를 방문했을 때 참모총장인 나를 별도로 찾아와 두
브레이크 없는 벤츠2005년 초, 나는 칠순의 문 앞에서 천성관 검사에게 편지를 띄웠다. 억울함으로 정신적 고통과 육체적 고통, 그리고 경제적 손실과 명예 실추를 떠안고 산 지 12년이 경과한 즈음이었다.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권력에 무릎 꿇고 자기 출세를 위해서 사건 조작을 하는 천성관 검사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김용원 변호사가 쓴 《브레이크 없는 벤츠》를 보면 새파란 검사의 열정에 사사건건 정치검사의 참견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천 검사 또한 그저 출세하기 위해 권력에 빌붙은 권력의 노예, 황금의 노예, 향락
신속 재판참고인 자격에서 피의자로 45일 만인 1993년 9월 15일, 서울 서초동 서울형사지법 조○○호. 용기 없는 판사는 거대한 권력 앞에 무릎을 꿇었다. 확실한 증거도 없으며 증인도 없는 가운데 유죄 판결을 내렸다. 사건 핵심 주범인 박동준 장군은 미국으로, 천성관의 경기고 선배인 한진구 장군은 국내에서 도피한 가운데 판사는 서둘러 내게 유죄 판결을 내렸다. 그리고 방청석의 야유와 웅성거림 속에 나를 석방했다. 45일 만에 급하게 재판하고 석방한 것은 의문이다. 도피한 피의자 2명을 조사하지 않은 상태에서 재판할 수 있는가.
참고인에서 피의자로1993년 7월 31일, 참고인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지검에 도착했다. 순간 나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각 언론사 취재진이 진을 치고 있었다. 연신 플래시를 터뜨리며 질문을 하는 기자들 앞에 서면서 인권 찾는 김영삼이 눈에 어른거렸다. 해명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으나 그 믿음은 곧 무너졌다. 공안1부 903호실의 담당 검사 천성관을 마주하는 그 순간부터. 그는 내가 21사단의 사단장일 때 중위로 군법무관을 했던 부하였다. 사건을 조작, 언론 플레이를 통해 국민에게 알린 후,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모든
이것이 민주주의인가군인이 목숨 바쳐 싸우는 것은 민주주의 수호와 국민의 재산을 지키고 생명을 보호하기 위함이지, 특정인의 권력 유지 차원의 충성이 아니다. 수사기관에 불려가 본 사람은 구속과 불구속의 차이를 절감한다. 결과가 어떻든 ‘일단 구속하고 보자’는 검찰의 권력 남용으로 인한, 생명보다 소중한 명예의 훼손은 어디에서 보상받아야 하는가. 구속은 수사편의주의에서 비롯되었다. 일단 잡아넣고 심리적 압박을 가해 쉽게 자백을 받아 내려는 의도다. 수사편의주의는 우리 헌법에 반한 행위다. 우리 헌법에서는 ‘유죄 확정까지 피의자는 무죄로
YS는 안 됩니다6공화국 후반기로 접어들면서 노 대통령의 가장 큰 고민은 후계자였다. 이전인 1990년 1월 22일, 여소야대의 정국을 헤쳐 나가기 위해 JP(김종필 총재), YS(김영삼 총재), TJ(박태준 최고위원)가 3당 통합을 한 후부터 이어진 고민이었다. JP는 젖혀 두고 YS냐, TJ냐를 따졌다. 한번은 내게 의중을 물어오기에 “YS는 안 됩니다”라고 답했다. 어떻게 알았는지 하루는 YS의 측근인 최형우 정무장관이 나를 찾아와 “이 형, 도와주세요. 대통령께 말씀 좀 잘해 주세요. 우리 집권해야 되지 않겠습니까?”라며 사
엘리트 체육과 생활 체육의 활성화체육청소년부 장관이 되어 제일 먼저 내건 목표는 전국 각지의 생활체육 활성화와 청소년 육성 시설의 확대가 절심함을 느꼈다. 게이트볼 등 체육시설 10개가 노인병원 20개의 효과가 있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현재는 생활체육협의회를 대한체육회가 합병하여 관리하고 있다. 당시는 국위를 선양하는 올림픽을 위한 대한체육회를 필두로 한 엘리트 체육과 국민생활체육협의회를 활성화하는 데 최선을 다했다. 각 지방 단위로 청소년 훈련 시설과 일반 국민의 생활체육 활성화에 대한 수요를 정책적인 차원에서 지원하는 방안을
인간이 가장 행복한 것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다.- 이진삼 -체육청소년부 장관“가족과 함께 테니스 라켓을 가지고 청와대 체육관으로 내일(1991년 12월 11일) 오후 3시까지 들어오라”는 대통령의 지시를 이현우 청와대 경호실장으로부터 전해 들었다. 우리가 청와대 체육관에 도착했을 때 대통령과 영부인은 테니스 선수들과 몸을 풀고 있었다. 운동 후 저녁식사를 하면서는 군대에서 있었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먼저 말문을 연 것은 노 대통령이었다.“군 생활이 좋아. 강등해서 사단장 하라면 다시 하겠다. 군대가 제일 좋아
품고보듬어 주는광활한 대지 어미의 손 길 같아라 대지 속 품은 씨앗거짓 없이 진실만공존케 하는 신뢰 수많은 생명의싹은 잉태 되어피고 지며 피는 어미의 품 속 같아라 늘 그 자리에서품고 품으며기다려 주는 어미 품 속 같아라 - 이경옥 수필가의 -
회장님, 고맙지만1991년 10월 오전 9시 태릉에서 골프 약속이 있었으나 오전 강수량이 20mm를 넘었고 오후에는 폭우 경보 발령까지 내려서 아침 7시경 취소하였다. 때마침 현대건설 사장이었던 이내흔 친구가 바람 쐬러 가자고 하여 어디론가 같이 갔는데 종로구 청운동의 현대그룹 왕회장 댁이었다. 정 회장은 백색 마스크를 벗으면서 “젊을 때 새벽 찬 공기를 마시며 일을 하다 보니 감기 면역성이 떨어져 조심하고 있다.”면서 독감이나 유행성 감기가 아니기 때문에 전염 걱정은 없다고 우리를 안심시켰다.1개월 전 한강 수해 당시 행주대교 건
교육지상(敎育至上), 중앙 심사부대의 우열은 간부의 우열에 비례한다.- 이진삼 -1990년 9월, 육군대학 초도순시차 방문했다. 순시를 마치고, 강당 연단 위에 내가 볼 수 있도록 1972년 1월 23일에 졸업한 나의 육군대학 성적이 놓여 있었다.“육군대학총장이 나를 기분 좋게 하려고 졸업성적을 갖다 놓았는데 내가 왜 성적이 좋았는지 교관들에게 물어보겠다. 답변을 듣고 싶다.”몇몇 교관들이 일반론적인 답변만을 하니 대학총장이 “답변자가 없는 것 같습니다.”라고 했다.“상금 걸어 놓았는데! 내가 머리가 좋았기 때문도 아니고 교관들에게
가칠봉 수영장제4땅굴을 발견한 최전방 고지인 가칠봉(1,242m) 남방한계선 철책선상 우리 측 GP에 장병용 수영장을 만들었다. 1989년 1군사령관 재임 시 시공하여 1991년 참모총장 시 개장했다. 땅굴을 발견하기 위해 시추공 작업을 하던 중 수맥을 발견했다. 하루 150톤의 수량을 생활용수와 급수시설로 활용하고 수영장을 만들었다. 이곳은 전 휴전선에서 적 GP와 우리 GP 간의 거리가 가장 가깝다. 2013년 12월 24일 박근혜 대통령이 다녀간 가칠봉 고지와 2014년 6월 초 김정은이 다녀간 속칭 김일성 고지가 마주보이는
나는 울지 않았다눈물이 흐른다 나는 울었다눈물이 나지 않는다 고통으로 막혀더 이상동요되지 않는다 나 자신의 고집 때문도 아닌어쩔 수 없이 당해야 했던 그 고통이눈물마저 막아 버렸다 - 송은주 시인의 -
UH-60은 세계 최우수 헬리콥터1991년 7월, 대한민국 육군의 미래 주종 헬리콥터, 세계 최신예기로 미국에서 UH-60을 도입하여 육군참모총장이 최초로 운항하게 되어 있었다. 서울∼계룡대 간에 25분이 소요되며 쌍발 엔진으로 바다에 불시착해도 장시간 생존 가능한 고가의 장비다. 도입 전 미국회사 시험 비행사 8명이 도착해 3개월간 한국조종사와 합동 운항토록 되어 있었다.1991년 8월, 서울 출장차 수행원들과 육본 헬기장에서 이륙하려는 순간, 미 조종사가 엔진 2개 중 1개의 이상으로 운행불가라는 보고를 했다. 즉시 리스카시 연
염해(鹽害)란 나트륨, 마그네슘, 칼슘 등을 함유한 염분이 농작물, 건축물, 시설물 등에 피해를 입히는 것으로 해안지역이나 간척지 등에서 주로 발생한다.염해는 크게 바닷물에 의한 염수해와 바닷바람에 의한 염풍해로 나뉜다. 염수해는 만조 때 바닷물이 범람하거나 가뭄에 의하여 하천유량이 감소하였을 때 주로 나타나고 염풍해는 태풍이나 돌풍 등 바람에 실려 온 해수의 입자가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정부는 농지법 개정을 통해 지난해 7월 1일부터 이 같은 염해지역 간척농지의 원상복구를 전제로 최대 20년 동안 태양광발전소를 운영할 수 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