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삼 전 육군참모총장(전 체육청소년부 장관, 전 국회의원)이 충청향우회중앙회 제13대 총재에 취임했다.‘타이거 제너럴’이라는 닉네임을 갖고 있는 이 전 총장은 ‘살아있는 군의 전설’로 불리는 인물로 충청을 넘어 전국적으로 존경을 받는 충청의 어른이자 대한민국의 어른이다.충청향우회중앙회(총재 이진삼)는 지난 28일 오후 6시 서울시 영등포구 신길동 소재 공군호텔에서 상임고문을 비롯한 지역향우회장 및 내외빈들이 참석한 가운데, 제11~12대 정기엽 총재 이임식 및 제13대 이진삼 총재 취임식을 개최했다.행사는 국민의례·내외빈 및 지역
이진삼 그의 일생은 공산주의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한 삶의 연속이었다. 국가를 위하여 싸우자고 함께 다짐했던, 전우들을 먼저 간 전우들에 대한 죄책감으로 현충원을 찾을 때마다 용서를 빈다. 차라리 그가 적의 흉탄에 쓰러졌다면 영광스러운 마지막이 되었을 것이라고 표현한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정의롭게 살고자 노력했던 그의 군 생활은 파란만장 그대로였다. 부하들에게 강력한 교육훈련과 전투진지 요새화 등 많은 것을 강조하고 요구한 것은 지휘관 본연의 자세다.변화무쌍 세상 속에서 그의 애국심은 만고불변할 듯하다. 본인은 “머리 안 좋다”,
YS는 안 됩니다6공화국 후반기로 접어들면서 노 대통령의 가장 큰 고민은 후계자였다. 이전인 1990년 1월 22일, 여소야대의 정국을 헤쳐 나가기 위해 JP(김종필 총재), YS(김영삼 총재), TJ(박태준 최고위원)가 3당 통합을 한 후부터 이어진 고민이었다. JP는 젖혀 두고 YS냐, TJ냐를 따졌다. 한번은 내게 의중을 물어오기에 “YS는 안 됩니다”라고 답했다. 어떻게 알았는지 하루는 YS의 측근인 최형우 정무장관이 나를 찾아와 “이 형, 도와주세요. 대통령께 말씀 좀 잘해 주세요. 우리 집권해야 되지 않겠습니까?”라며 사
엘리트 체육과 생활 체육의 활성화체육청소년부 장관이 되어 제일 먼저 내건 목표는 전국 각지의 생활체육 활성화와 청소년 육성 시설의 확대가 절심함을 느꼈다. 게이트볼 등 체육시설 10개가 노인병원 20개의 효과가 있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현재는 생활체육협의회를 대한체육회가 합병하여 관리하고 있다. 당시는 국위를 선양하는 올림픽을 위한 대한체육회를 필두로 한 엘리트 체육과 국민생활체육협의회를 활성화하는 데 최선을 다했다. 각 지방 단위로 청소년 훈련 시설과 일반 국민의 생활체육 활성화에 대한 수요를 정책적인 차원에서 지원하는 방안을
인간이 가장 행복한 것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다.- 이진삼 -체육청소년부 장관“가족과 함께 테니스 라켓을 가지고 청와대 체육관으로 내일(1991년 12월 11일) 오후 3시까지 들어오라”는 대통령의 지시를 이현우 청와대 경호실장으로부터 전해 들었다. 우리가 청와대 체육관에 도착했을 때 대통령과 영부인은 테니스 선수들과 몸을 풀고 있었다. 운동 후 저녁식사를 하면서는 군대에서 있었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먼저 말문을 연 것은 노 대통령이었다.“군 생활이 좋아. 강등해서 사단장 하라면 다시 하겠다. 군대가 제일 좋아
공수부대 마크가 아깝네1970년 10월 15일, 소령으로 8사단 보안부대장에서 보안사령부 인사과장으로 명령을 받았다. 1970년 10월 14일 오전 이‧취임식을 마치고 나자 5군단 보안부대장 김원태 대령이 내게 5군단장에게 인사드리고 떠날 것을 제안했다. 신고나 인사를 꼭 할 입장은 아니었다. 그러나 지역 군단장을 예의상 찾아보기로 했다. 당시 군단장은 이병형 장군으로 6·25전쟁 때 대단했던 인물이었다. 사실 군단장은 사단 보안부대장이 어디로 가든 관심 없는 직책이다. 군단장이 식사하러 갈 때 식당입구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인사하는
휴무일(休務日)기독교에서 안식일은 주일(主日)로 삼는 일요일을 말하며 안식교와 유대교는 토요일을 안식일로 삼고 예배를 본다. 안식년은 서양의 선교사와 유대인들이 7년 만에 1년씩 쉬는 해이다.인간이면 누구나 자유를 그리워하지만 24시간 틀에 박힌 생활을 하는 군인들은 특별히 그러하다. 토요일 오후부터 일요일 그리고 공휴일을 휴무일로 정하고 근무자 외에는 옷을 벗고 모든 장병은 영내에서 썬탠을 하거나 지역 광산에서 구한 자갈을 깔아 먼지 없는 영내 도로를 맨발로 걸으며 발바닥을 단련하고 무좀을 예방했다. 매년 9월에 육체미, 깜둥이,
축구부나는 특기를 축구라 하고 육사에 들어왔으나 정작 축구부에는 가입하지 않고, 태권도부에 들어갔다. 이유는 축구를 하게 되면 학과 공부를 따라갈 수 없어 퇴교 당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에서였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수요일 체육의 날 오후, 4학년인 축구부 주장 최병진 생도가 신입생 명단을 들고 나를 찾으러 다녔다. 그러다 태권도부에 있던 나를 발견하자마자 감정을 실어 힘껏 주먹을 날렸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나는 굳이 그의 주먹을 피하지 않았다. 꿈쩍도 하지 않았다. 입술과 입안이 터져 피투성이가 되었으나 뱉지 않고 삼켰다.“인마